기초수급가정 기아대책 후원에 한체대 입학
행복한홈스쿨 돌봄으로 강원도 역도계 제패
"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온 마을이 함께해야"
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다섯 살 소년에겐 어머니만 남았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으로 세 식구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의 부재는 어머니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의지하던 남편을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어머니 눈에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방황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홀로 집을 지키던 소년은 라면과 과자로 끼니를 때우며 울다 지쳐 잠들기 일쑤였다.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년은 폭식으로 결핍을 잊으려 했고, 욱여넣었던 음식 탓에 뚱뚱해진 몸은 또래의 놀림감이 됐다.
NGO·홈스쿨 후원으로 한체대 입학… "국가대표 선발 목표"
그렇게 빛을 잃어가던 소년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을 들어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역도로 올해 한국체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강원 원주고 출신 전범준(19)군 이야기다. 전군은 14일 본보 인터뷰에서 "아직도 대학에 입학한 게 믿기지가 않는다. 천천히 기록을 높여 졸업할 때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게 목표"라며 포부를 밝혔다.
전군의 인생은 아동복지·구호전문 비정부단체(NGO)인 '희망친구 기아대책(기아대책)'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2010년 기초수급가정 아동이었던 전군의 형편을 눈여겨본 초등학교 선생님은 기아대책에 도움을 요청했고, 기아대책은 단체가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인 '행복한홈스쿨'에 전군을 인도했다.
전군은 이곳에서 은인을 만났다. 정운숙(62) 횡성 행복한홈스쿨 시설장이 기억하는 전군의 첫 모습은 "또래에 비해 몸집이 크고 정서적으로 불안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아이"였다. 시설장과 생활복지사 2명이 아이 29명을 관리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방과후 혼자 남은 전군을 1대 1로 돌보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과 결연 후원금으로 균형 잡힌 식단과 인성교육·체험활동을 제공하니, 전군의 몸과 마음은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불가능할 것 같은 무게 들어올렸을 때 기분, 말로 못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전군 인생에 또 한 번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역도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3년 역도부 코치의 눈에 띄어 우연히 역도부에 입단한 게 바벨을 들어올린 계기였다. 전군은 "해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무거운 걸 들어올렸을 때의 기분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고 떠올렸다. 부상을 겪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코치와 시설장의 조언과 격려로 극복할 수 있었다.
역도를 시작한 이듬해부터는 교육감기 학생역도경기대회, 강원회장기 역도선수권대회, 강원도 소년체육대회 등에서 매년 종합 1위를 휩쓸며 강원도 역도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2017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선 최고 성적 2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전국춘계역도대회에선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결국 역도 유망주로 한국체대에 입학해 지금은 국가대표를 꿈꾸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등록금이 부족했지만 기아대책에서 장학금을 지급해 입학할 수 있었다.
"도움 없인 포기했을 것"… 홈스쿨장 "계속 희망의 싹 틔우겠다"
전군의 인생은 역도와 닮았다. 짓눌린 삶의 무게에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대신 역경을 이겨내고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역도가 오롯이 혼자 감내하는 운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뒤에서 수많은 어른이 함께 들어올린 것이라고 전군은 말한다. 전군은 "정 시설장님을 비롯해 후원자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가정형편 때문에 결국 운동을 그만뒀을 것 같다"며 "나처럼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도 '주변을 둘러보면 도와줄 어른들은 충분히 많으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정 시설장은 "전군은 본인 의지와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라며 대견해했다. 그가 이끄는 횡성 행복한홈스쿨은 지난해에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플루트 인재를 입학시킨 바 있다. 홈스쿨 프로그램에서 플루트를 접하면서 적성을 찾은 사례다. 정 시설장은 "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온 마을이 함께한다"며 "어른들로 인해 생겨난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해, 희망의 싹이 자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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