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김학순 할머니 증언 보도 우에무라
‘날조된 기사’ 비방에 명예훼손 인정 안 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보도한 일본 언론인 우에무라 다카시씨의 저서 '진실-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의 표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는 첫 보도를 했던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62)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자신의 기사를 ‘날조 기사’라 비방한 글에 대해 명예훼손이라며 손해배상소송을 냈으나 1·2심에 이어 상고심에서도 패소했다.
14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 제1소법정은 우에무라씨가 주간지 슈칸분슌 발행사인 분게이슌주와 레이타쿠대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객원교수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원고 측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우에무라씨의 청구를 배척했던 1·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우에무라씨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인 1991년 8월 11일 자 지면을 통해 최초로 김학순 할머니(1997년 타계)의 증언을 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했다. 그가 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전 조선인 종군위안부, 전후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묻혀 있던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어 김 할머니 등이 그해 12월 25일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자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 이슈가 되었고, 일본 정부가 위안소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1993년 8월 4일의 ‘고노 담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니시오카씨는 우에무라씨의 기사가 날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슈칸분슌은 2014년 이를 인용해 보도했다. 기사 본문에는 김 할머니가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고 돼 있지만 기사 머리에 “여자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장에 끌려가 매춘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쓴 부분이 ‘날조’라는 것이다. 여자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했고, 속아서 간 것인데 전쟁터에 강제 연행된 것처럼 쓴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당시 우익의 항의가 빗발치자 아사히신문은 정정보도를 내고 사과했다.
우에무라씨는 이 논문의 내용 및 관련 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았던 도쿄지방재판소(지법)는 피고 측 의견을 받아들여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지난해 3월의 2심 판결에서 인용됐고, 이번 상고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에무라씨는 이번 상고심 판결에 대해 “취재를 토대로 쓴 기사인데 날조라고 단언하는 것은 저널리스트에게는 사형선고와 같다”며 “지극히 부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니시오카씨와 분게이슌주 측은 “당연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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