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만세 운동 역사 책자 내고 기념비 제작 추진까지
성동역사연구회 최창준·원동업씨?
"정치인, 학생 아닌 노동자 주도... 경성 밖 최대 만세 운동"
11일 성동구 서울숲 주변 700여 세대가 사는 고급 아파트 단지 앞 공원. '님들이 있어 우리의 독립국가는 현실이 되어갔습니다.' 1m 높이의 기념비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두 팔을 높이 들어 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조각이다.
성동구는 3·1절인 지난 1일 '뚝섬만세운동기념비'를 세웠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이 집을 사들이는 등 21세기 '연예인 스카이 캐슬'로 떠오른 이 아파트 주변은 102년전인 1919년 3월 26일, 만세운동이 벌어진 현장이었다고 한다.
탑골공원이 아닌 뚝섬에서 그것도 3월 1일이 아닌 26일 만세운동이라니.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새롭게 부각한 이들은 성동역사연구회 회원들이다. 역사학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 5명이 모여 '뚝섬 삼일운동' 자료집(2016)을 내고, 기념비 건립 추진까지 했다.
3·1운동 당시 뚝섬은 한양에 땔감과 채소를 뗏목으로 공급하는 도성 밖 변두리였다.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모인 연구회 회원들은 2014년 지역 근현대사를 담은 '뗏목이야기' 자료를 찾다 우연히 3·1운동 기록을 발견했다. 연구회 회장 최창준(67)씨는 "뚝섬만세운동은 당시 짐꾼 달구지꾼 우마차꾼 등이 주체가 돼 주도했다"며 "정치인이나 학생이 아닌 일하러 나온 평범한 노동자가 중심이 된 풀뿌리 독립운동의 역사가 있다는 게 놀라웠고, 그렇게 묻혀있는 게 아까워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국가기록원,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와 보훈처 공훈전자자료관 등을 샅샅이 뒤졌다. '삼천리강산 13도 중 2천만 동포가 모두 소동을 하는데 뚝도(옛 뚝섬) 청년들은 무일언반시(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2월 25일(양력 3월26일)은 뚝도 우편안골 우물 앞으로 공모되어서(모여서) 만세를 부르시되 시간은 하오 7시 30분'이란 내용이 적힌 시위 유인물 등을 찾았다. 일제 경찰 기록엔 이 유인물에 실린 대로 3월 26일 오후 9시께 야소교 교회(성수동교회 추정) 앞에서 만세소리가 들렸고, 주민 1,500여 명이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한양 밖서 벌어진 최대 만세운동이었다. 연구회의 또 다른 회원인 원동업(53)씨는 "경찰 조서에 '총소리가 나고 흩어지려 하자 김완수가 '흩어지지 마시오'라고 소리치는 내용 등이 자세히 담겼고, 그걸 읽고 놀랐다"고 말했다.
마차꾼 김완수(31), 소달구지꾼 김일남(28), 짐차꾼 염명석(36) 등 12명은 3·26 뚝섬 만세운동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연구회는 보훈처를 통해 어렵게 연락이 닿은 염 선생 외손자 김득환씨 등 후손 두 명 집을 직접 찾아가 독립 운동 후손의 생애까지 자료집에 실었다.
연구회는 각 지역에서 동네 역사를 찾고, 그렇게 발굴한 지역 문화를 공공에서 조명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최씨는 "만세운동은 지역 곳곳에서 이뤄졌는데, 일부는 묻혀버린 역사가 됐다"며 "그 지역 유산이 사라지기 전에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하고, 그게 바로 우리 삶을 윤기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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