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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거부했던 말기암 노인은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 보였다

입력
2021.03.16 21:00
수정
2021.03.17 12:5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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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문기 내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사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가한 평일 오후였다. 대기하는 외래 환자도 많지 않았다. 나는 환자들의 차트를 확인하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백발의 여성 노인 한 분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나이는 80대였고, 딸이 동행했다. 노인은 한두 달 전부터 기운이 없고 숨이 차다고 했다. 눈꺼풀 안쪽 결막은 창백했고 다리도 많이 부어있었다.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니 움푹 들어가는 압흔(壓痕)성 부종이 있었다. 수개월 이상 지속된 빈혈로 심장에 무리가 와 생기는 증상이었다.

이 경우 빈혈의 원인이 중요한데, 노인들은 악성종양으로 인한 빈혈이 많다.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곧바로 혈액 검사와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CT)에 들어갔다. 우측 상행결장(오른쪽 맹장에서 간을 향하여 올라가는 장)에 거대한 덩어리가 있었다. 관장을 하고 대장내시경을 시행했다. 내시경을 거의 끝까지 밀어 넣자, 대장 깊숙한 곳에서 암 덩어리가 보였다. 암 덩어리 표면으로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고 장 안의 공간을 90%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시경으로 제거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대장 안을 모두 막아버리기 전에 긴급히 수술을 해야만 했다. 나는 검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수술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환자는 한참 동안 땅만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사실 이만큼 어려운 질문도 없다. 같은 암이라도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제가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수술하지 않으면 악성종양이 더 자라서 대장을 막아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말로 얼마 더 사실 수 없게 됩니다."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노인은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진료실을 나갔다. 수술이나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나는 노인의 뒤를 따라 나가는 딸을 붙잡고 재차 설명했다. 수술을 하면, 그리고 수술이 잘된다면 결과가 좋을 수 있지만, 수술 자체를 안 받으면 정말로 위험해진다고. 하지만 딸 또한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만 날 선 말을 던지고 말았다. "저는 분명히 설명 드렸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선택은 제가 아닌 환자분이 하신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그 일은 점점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진 듯했다.

정확히 석달 후 노인이 다시 외래에 찾아왔을 때, 그가 누구이고 어떤 상태였는지 기록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내 기억은 또렷하게 돌아왔다. 노인은 많이 나빠져 있었다. 휠체어 팔걸이에 기대어 겨우 몸을 가눌 정도였다. 팔의 근육은 이미 말라 만져지지조차 않았다. 얼굴과 다리는 부어 눈조차 뜰 수 없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환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은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인은 웃고 있었다. 엄청난 통증이 엄습하고 있을 텐데도 표정은 밝았다. "선생님한테서 암 선고받고 나서 주말만 되면 경치 좋은 곳을 찾아서 다녔어요.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뭐든 하나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움직이면 숨이 차고 음식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보내는 주말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는 한 번 크게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평생 아등바등 살았어요. 그런데 곧 죽는다 생각하니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구요. 팔십 평생 자식들과 이야기 한번 제대로 나눈 적도 없는데, 인생 끝에와서 겨우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네요."

옆에 서 있던 딸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역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암 말기가 되면 심한 통증이 밤마다 엄습해 목을 옥죄 듯 숨이 차게 된다. 이 노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끝내 병원 진료를 원치 않았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 듯했다.

가족들은 고통을 더는 지켜보지 못해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고 했다. 노인은 결국 입원했다. 영양 공급과 함께 진통 조절을 했지만, 고용량의 마약성 진통제로 인해 의식이 흐려졌고 더 이상 의미있는 대화는 나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사망 선언을 하는 내게 유족들은 감사하다고 했다. "사실 강제로라도 모시고 와서 수술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더 강하게 얘기하셨으면 억지로라도 수술받고 항암치료도 받도록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남은 시간을 수술과 항암의 고통 속에 보냈을 거잖아요.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더 큰 후회가 남았을 것 같습니다."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자식들은 만사 제쳐두고 어머니 곁을 지켰다고 한다. 1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한 친척, 형제들도 타지에서 매주 찾아왔다. 이들과 이야기 나누던 어머니의 모습은 참 행복해보였다고 했다. 얼마 후 외래에 음료수 한 박스가 배달되었다. 박스엔 '덕분에 어머님 장례 잘 치렀습니다. 감사합니다'란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의사로서 내가 수술을 권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수술받지 않겠다고 내 방 문을 나서던 노인에게 차갑게 말했던 것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가장 힘든 사람은 그 노인과 딸이었을 텐데, 내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여태껏 전문가인 의사의 조언을 무시하는 건 환자의 독선과 아집이고 결국은 그 대가를 치른다고 여겨왔는데, 어쩌면 그렇게만 생각하는 내가 더 문제였던 건 아닐까.

노인 가족이 보내준 음료수는 마실 수가 없었고 꽤 오랜 시간 진료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홍문기 대구가톨릭대 칠곡가톨릭병원 내과과장

홍문기 대구가톨릭대 칠곡가톨릭병원 내과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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