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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는 새 발의 피” 블러드랜드의 대량 학살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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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는 새 발의 피” 블러드랜드의 대량 학살을 기억하라

입력
2021.03.04 14:5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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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블러드랜드에 속해 있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유럽의 다른 어떤 수도보다 참담한 운명을 맞이했다.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1943년 4월 바르샤바 게토에서 봉기가 일어났지만 대가는 컸다. 도시는 완벽히 파괴됐고, 130만명 인구 중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게토에서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글항아리 제공

2차 대전 당시 블러드랜드에 속해 있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유럽의 다른 어떤 수도보다 참담한 운명을 맞이했다.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1943년 4월 바르샤바 게토에서 봉기가 일어났지만 대가는 컸다. 도시는 완벽히 파괴됐고, 130만명 인구 중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게토에서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글항아리 제공

20세기 최악의 비극이자 야만으로 꼽히는 사건으로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를 대개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아우슈비츠는 잔인한 학살의 대명사로 기억된다. 하지만 동유럽사 연구 권위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새 발의 피’였다는 주장을 편다. 같은 시기 일명 ‘블러드랜드’에서 죽어간 1,400만명의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면서다. 2010년 출간 당시 홀로코스트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피에 젖은 땅’(원제 Bloodlands)이 10여년 만에 번역돼 나왔다. 저자는 히틀러의 나치와 스탈린의 소련에 의해 자행된 대량 학살의 참상을 낱낱이 까발리며, 복잡한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때 비극은 반복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마침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부모 세대에 이어 자식 세대가 비극의 유산을 어떻게 마주하고, 극복해가는지를 다룬 ‘생존자카페’도 나란히 출간됐다. 두 책은 인간의 악(惡)이 어떤 연유로 극에 달하는지, 그 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준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이끈 대량 학살의 전모

“20세기 유럽의 홀로코스트를 이해하는데 아우슈비츠가 전부가 될 수 없다”고 보는 저자는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16개 기록보관소에 봉인됐던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 살육의 주무대를 유럽의 유대인들이 모여 있던 ‘블러드랜드’로 확장시킨다.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아우슈비츠도 물론 여기에 속해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집권한 1933년에서 1945년까지 겨우 12년 동안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만 1,400만명. 대단한 전투가 벌어져서가 아니다. 죽은 사람 대부분은 무장은커녕 모든 걸 빼앗긴 여성, 어린이, 노인들이었고, 집단 수용소가 아닌 곳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2차 대전 당시 블러드랜드에 속해 있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유럽의 다른 어떤 수도보다 참담한 운명을 맞이했다. 나치의 폭격 이후 도시의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2차 대전 당시 블러드랜드에 속해 있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유럽의 다른 어떤 수도보다 참담한 운명을 맞이했다. 나치의 폭격 이후 도시의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대량 학살을 기도한 건 스탈린이 먼저였다. 1932년 스탈린은 농업 집단화 정책에 반발하는 우크라이나 주민 수백만명에 대해 식량 배급을 중단하며, 굶겨 죽이기로 결정한다. 고의적인 ‘아사정책’이다. 책이 전한 당시의 참상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사람들은 굶주림을 참다 못해 인육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엄마가 자신을 먹도록 자식에게 강권하거나, 자신의 살조각을 뜯어 먹는 아이도 있었다.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바르샤바 게토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바르샤바 게토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광란의 살육은 대숙청(1937-1938년) 시기에 벌어진 총살, 그리고 가스실로 이어진다. 스탈린의 살육 방법을 ‘학습’한 히틀러는 더욱 잔인한 살인 기계로 거듭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마치 군비경쟁 하듯 더 많은 사람을 죽이도록 서로를 자극하는 ‘적대적 공모’ 관계로 나아가면서 살육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차 대전 시기, 유럽 시민 1,400만명이 죽어갔던 블러드랜드는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들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나치와 소련의 힘, 그리고 악의가 얽히고설킨 땅이었다. 글항아리 제공

2차 대전 시기, 유럽 시민 1,400만명이 죽어갔던 블러드랜드는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들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나치와 소련의 힘, 그리고 악의가 얽히고설킨 땅이었다. 글항아리 제공

왜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했나. 저자는 이상주의에 사로잡혔으나 실패한, 정치인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사회주의 제국과 전쟁 승리를 각각 외치던 스탈린과 히틀러는 자신들의 유토피아가 실현 불가능해지자, 급한 대로 희생양을 찾았다. 사회주의 달성을 위한 집단화가 우크라이나에서 저항과 굶주림을 불러오자 스탈린은 부농,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에게 책임을 물었고, 독일군이 모스크바에서 차단되고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히틀러는 유대인에게 책임을 물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숫자로 봤던 이들에게 살육은 이루지 못한 목표를 대신할 '성과'였을 뿐이다.

피에 젖은 땅·티머시 스나이더 지음·함규진 옮김·글항아리 발행·832쪽·4만4,000원

피에 젖은 땅·티머시 스나이더 지음·함규진 옮김·글항아리 발행·832쪽·4만4,000원

“숫자들을 사람들로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없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단지 우리의 세상을 마구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마저 개조했다는 뜻이 되리라.” 이성을 마비시킨 광기가 빚어낸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저자는 숫자가 돼버린 사람들의 개별 이야기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이 끔찍한 비극을 저지른 범죄자와 방관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복기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희생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이는 도덕적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키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이해를 포기해선 안 된다. 그건 역사를 버리는 일"이란 저자의 말은 또 다른 블러드랜드의 비극을 막고자 하는 경고다.

◇대물림되는 학살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생존자 카페’ 저자의 부모는 나치 시절 악명 높았던 바이마르의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저자의 어머니는 식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고픔을 호소하고, 닭을 먹을 때도 뼈다귀를 쪼개 골수까지 먹을 정도로 집착한다. 학살을 피해 숨어 살고 굶기를 밥 먹듯이 했던 경험이 수십 년이 지나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남은 거다.

2018년 4월 나치의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해방 73주년 기념 행사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생존자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기념물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바이마르=AP 연합뉴스

2018년 4월 나치의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해방 73주년 기념 행사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생존자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기념물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바이마르=AP 연합뉴스

트라우마는 대물림된다. 학살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생존자의 자식, 그리고 손주 세대에게까지. 저자는 정면돌파를 택한다. 부모 세대의 기억이 망각되지 않도록,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생존자 2세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기억의 방식을 열어 나가고자 노력한다. 저자가 만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주 세대 중 다수는 조부모의 수감 번호를 문신에 새기며 피부에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생존자 카페·엘리자베스 로즈너 지음·서정아 옮김·글항아리 발행·400쪽·2만원

생존자 카페·엘리자베스 로즈너 지음·서정아 옮김·글항아리 발행·400쪽·2만원

저자가 손 내미는 대화 상대는 희생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듯 가해자의 사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스나이더가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과 맞물린다. “사건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에 의해 대대로 전승된다. 더는 대화할 수 없게 될 때, 고통은 잊히고 폭력은 반복될 것이다.” 끔찍한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을 발굴하고 계승하는 일은 역사가를 넘어 우리 모두의 과제가 돼야 한다고 두 책은 말해주고 있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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