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이 반도체 분야에서 또 다시 심화될 조짐이다. '반도체 굴기'(?起·우뚝 섬)를 선언한 중국에 미국의 추가 제재가 예고되면서다. 일본, 네덜란드 등 동맹국과 손잡고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공급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미국 국립인공지능보안위원회(NSCAI)의 정책 권고가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이미 미 정부의 거래제한 명단(블랙리스트)에 게재된 중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NSCAI의 이번 권고로 추가 제재가 이어질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中, 반도체 장비 수입 못하게 동맹국과 협력해야"
2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NSCAI는 이날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추월을 막기 위해선 관련 규제 강화가 필요하단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했다.
NSCAI는 2018년 3월 미 의회 산하에 세워진 인공지능(AI) 분야 민관 자문 기구로, 에릭 슈밋 전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회장과 로버트 워크 전 국방부 차관이 이끌고 있다.
750여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엔 뜨러운 감자인 AI 분야에서 중국을 압도하기 위한 미국의 주요 전략들이 소개됐다. 핵심은 역시 '반도체'다. 미국이 IT 제품의 필수 부품인 반도체 분야에서 승기를 잡으면 모든 영역에서 중국을 앞설 수 있다는 논리다.
NSCAI는 보고서에서 "중국이 가장 작은 트랜지스터(반도체 소자)로 첨단 칩을 만드는데 필요한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지 못하도록 수출 제한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반도체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 일본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하웨이와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 등 275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미국의 반도체 재료와 장비 공급을 원천 차단했다. 다만,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길이 완전히 막힌 건 아니다. 핵심 장비는 일본이나 네덜란드에서도 구할 수 있다. 가령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에서 독점 생산한다. 동맹국과의 협력으로 중국의 우회로까지 원천 차단하자는 게 NSCAI의 주장이다. 이어 미국 내 더 많은 반도체 생산기지가 생길 수 있도록 350억달러(한화 39조2,840억원) 규모의 보조금 정책도 제안했다.
미 의회와 조 바이든 행정부도 1년7개월여만에 제출된 NSCAI의 최종 보고서를 최대한 정잭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반도체 등 필수부품의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대 반도체 수입국 中…반도체 굴기 물건너가나
NSCAI 보고서 공개와 함께 중국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매출의 32%를 차지하는 반도체 최대 수입국이다. 특히 하웨이를 비롯해 샤오미, 오포 등 자국내 자리한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신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 등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추가 제재가 시행될 경우, 중국 타격이 불가피한 이유다.
중국이 최근 2025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생산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단 계획을 발표했지만, 반도체 장비의 수입이 막히면 신형 첨단 칩 생산은 불가능하다. 니케이 아시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은 최근 시장에 나온 중고 반도체 장비를 싹쓸이했다. BBC는 "이런 구형기계로는 스마트폰이나 군사용 무기에 들어갈 첨단 칩을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의 전방위 제재로 국내 업체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미국에 추가 반도체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인 삼성전자가 수혜도 점쳐진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가 쪼그라들면 국내 파운드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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