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친일음악가 제작 교가 바꾸자" 합심
51년 만에 청소년 감성 담은 새 곡으로 교체
‘우린 꿈을 꾸어요. 푸른 하늘 바라보며 항상 내 안에 숨어있던 날 찾아가요…
때론 방황하고 길을 잃어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따스함이 내 앞을 지켜주리라’
충북 단양군 단성중학교가 올해 교체한 새 교가 가사다. 단성중은 친일 잔재 지우기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새 교가를 만들었다. 기존 교가는 이 학교가 1969년 단양여자중학교로 개교할 당시 이은상이 작사한 곡이다. 가사는 ‘조국과 인류의 영광을 위해 길이 빛날’ 등 다소 무겁고 딱딱한 문구 일색이다. ‘향기론(로운) 겨레의 꽃송이들’ 같은 성차별적인 표현도 있다.
이은상은 대표적인 친일 음악가로 분류된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고, 친독재 논란까지 빚은 인물이다.
50년 넘은 교가를 바꾸기 위해 단성중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학내 구성원 전체가 똘똘 뭉쳤다. 학생회는 교가 변경을 학생자치회 안건으로 상정하고, 학부모회 동문회 등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교사ㆍ학생이 합심해 가사 만들기 대회도 열었다.
음악 전문가 등의 도움으로 수 차례 수정을 거친 새 교가 가사는 청소년의 감성을 오롯이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소년기의 고민을 딛고 꿈과 희망을 일구자는 내용을 솔직히 표현했다. 딱딱한 행진곡 풍의 곡은 부드러운 멜로디로 바뀌었다. 단성중은 새 교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달부터 새 교가 쓰기ㆍ부르기 대회를 수시로 열 참이다.
충북교육청은 올해부터 친일 인사가 만든 교가나 군가풍 교가를 학생 감각에 맞게 교체하는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4월 초까지 교가 교체를 원하는 학교를 접수한 뒤 곡과 음원 제작을 학교별로 지원할 예정이다.
대상 학교는 25개 초ㆍ중ㆍ고교로 파악됐다. 이들 학교는 친일 전력이 있는 현제명ㆍ김동진ㆍ김성태ㆍ이홍렬(작곡가)과 이은상(작사가) 등이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교가의 대부분은 행진곡 풍이다. 가사에는 ‘학도’ ‘건아’ ‘사명’ ‘피’ 등 군국주의 분위기를 풍기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사실 도교육청은 지난 2019년부터 친일 음악가들의 교가를 교체하도록 해당 학교에 권고해왔다.
하지만 교가를 새로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동문회 등의 반대에 부닥쳐 교체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교가를 바꾼 학교는 단성중 단 한 곳 뿐이다.
최윤희 충북교육청 장학사는 “기존 교가 중 상당수는 동심과 동떨어진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 학생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친일음악가 교가를 비롯해 시대에 맞지 않는 교가를 과감히 바꿔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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