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향한 날선 비판도, 극일(克日) 메시지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서 '과거를 둘러싼 대치'보다는 '미래를 향한 대화'를 말했다.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서도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해결만 앞세우면 한반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따라 기조를 바꾼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대화를 시작할 새롭고도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일본이 요구하는 강제 동원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은 기념사에 없었다.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한 일본 반응은 대체로 냉랭했다. 한일 관계는 당분간 계속 싸늘할 전망이다.
"유일한 장애물은 과거와 미래 분리하지 못하는 것"
문 대통령은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지난 수십 년간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쓴 "가장 가까운 이웃"보다 한층 유화적인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성장은 일본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됐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 협력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뜻으로, "친일 잔재 청산"(2019년 3·1절) "위안부 문제는 반인륜적 인권 범죄 행위"(2018년 3·1절) 등을 직설적으로 언급한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선 "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며 과거사 해결을 미래 협력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다만 문 대통령은 한일 협력의 중요성 때문에 과거사 해결을 저버리진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면서도 강제 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가해자' 일본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문 대통령은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면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위안부 해법은 부재...日 흥미 못 느낄 듯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시하는 '한미일 3각 협력 체제 복원'에 적극적으로 보폭을 맞추는 모양새를 취했다. "한일 양국의 협력은 두 나라에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 번영에도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미일 협력'을 직접 거론했다.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미국에 거듭 확인시키려 한 것이다.
올해 7월로 예정된 일본 도쿄올림픽을 통해 경색 국면인 남북·한일 관계를 동시에 돌파한다는 구상도 명확히 했다.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은 한일, 남북, 북일, 그리고 북미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면서 "한국은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실리'를 염두에 두고 일본에 거듭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곧바로 '고자세'를 풀지는 미지수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1일 "문재인 정부의 태세 전환을 일본은 오히려 한국을 압박할 기회로 삼으려 할 수 있다"면서 "한국 사법부 판결에 대한 해법을 한국 정부가 제시하지 않는 한 관계 정상화도 어렵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일본의 말과 행동은 변한 것이 없는데 문 대통령만 변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쿄올림픽 구상' 역시 일본 입장에선 큰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일본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당장 급하지 않을뿐더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도쿄올림픽 개최 자체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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