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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배구계 폭력 미투… '성적학대' 이번엔 지도자 →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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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 배구계 폭력 미투… '성적학대' 이번엔 지도자 → 선수

입력
2021.03.01 04:30
수정
2021.03.02 20:39
8면
0 0

부산 동래중 배구팀 감독이 선수 대상 가학행위
성기 만지고 강제로 포경수술 시키기도

기사와 관련없는 사진. 유튜브 캡처

기사와 관련없는 사진. 유튜브 캡처


부산 동래중 배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복수의 관계자가 10여년 전 당시 감독이 폭력을 일삼았다고 지난달 28일 폭로했다. 동래중 배구부는 지금은 해체되고 없지만, 다수의 전·현직 프로,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한 배구 명문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모 전 감독은 최근까지 실업팀을 맡았다 훈련비 횡령 혐의가 불거져 지난해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 찢어져 응급실행…성폭력 피해도

2010년 부산 동래중 배구부원들이 대회에 출전한 모습. 왼쪽이 김 전 감독. 독자 제공

2010년 부산 동래중 배구부원들이 대회에 출전한 모습. 왼쪽이 김 전 감독. 독자 제공

폭력 피해는 2008년 전후 동래중 배구부에서 활동하던 2, 3학년 선수들에게 집중됐다. 당시 김 전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던 선수들은 한목소리로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다. 김 감독에 의해 강제로 포경수술을 받았다는 김모(28)씨는 "포경수술은 본인의 자유인데 동기, 후배들과 함께 강제로 받은 후 단체로 한 방에 누워 있었을 때 느낀 수치심은 아직도 손이 떨릴 정도"라고 했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발언이나 행동은 수년간 이어졌다. 여자친구가 생긴 선수에게는 공개적으로 성관계를 해봤냐고 물었고, 선수들이 휴가 기간 동안 자위행위를 했는지 확인한다는 이유로 속옷을 벗게 하거나 성기를 만졌다고 한다. 당시 피해를 입은 선수들은 "평소 성기를 장난감처럼 만지고 성적인 발언을 하며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성추행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선수들은 김 전 감독에게 맞는 건 일상이었다고 회상했다. 매일 폭행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황모(29)씨는 "술을 마신 김 감독이 (숙소에) 들어와 피자, 과자 등을 다량 사와서 다 못 먹는 선수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잠을 못 자게 했다"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밤마다 공포에 떨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같은 시기 선수로 활동했던 문모(28)씨는 "선수들을 체벌한다며 수시로 주먹으로 안면을 가격, 입에서 피가 나고 이가 흔들릴 정도로 맞았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2009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A(26)씨가 훈련 중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감독이 막대기로 때렸고, 머리 부위가 찢어져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강제로 잔반 먹이고 바나나로 고문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음식을 강제로 먹이는 등 가학 행위도 잦았다. 체구가 크지 않는 선수들이 희생양이 됐다. 살이 쪄야 한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남긴 잔반을 강제로 먹게 했다. 먹다 남긴 반찬과 밥, 국물을 한 그릇에 모은 사실상의 음식물 쓰레기였다. 김씨는 "잔반을 다 못 먹으면 그 자리를 못 벗어나게 했는데, 마른 애들은 거의 매일 먹다시피 했다"고 떠올렸다.

피해는 대를 이어갔다. 중1 때 선배들의 피해를 목격했던 B(26)씨는 2, 3학년이 되자 폭행 피해 당사자가 됐다. 어느 때는 숙소에서 자고 있는 선수들을 깨워 음식물로 학대한 적도 있다고 했다.

B씨는 "(김 전 감독이) 술을 마신 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선수들의 뺨을 때리고 바닥에 머리를 박게 한 채 바나나를 먹이면서 고문했다"며 "1.5리터짜리 음료수를 빨리 마시게 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3병까지 마시게 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상식적인 가학 행위였지만, 폭력이 일상이던 당시의 B씨에겐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학부모에 금전 요구, 실업팀선 횡령 혐의도

피해자들은 김 전 감독이 당시 갈취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전 선수들에겐 전국소년체육대회(소년체전) 출전을 앞두고 심판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며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내 아들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김씨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래는 (김 전 감독이) 100만원을 요구했는데, 너무 많다는 얘기가 나와 80만원으로 줄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전 감독의 도 넘은 행동은 이후 실업팀에서도 계속됐다. 부산시체육회 소속 전직 배구선수가 지난해 7월 김 전 감독의 폭언 및 음주 강요, 훈련비 횡령 등을 폭로하면서 그의 부적절한 언행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경찰이 횡령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서자 다른 선수들의 증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부산시체육회는 논란이 일자 김 전 감독의 직무를 정지하고, 올해 새 감독을 선임했다.

피해 선수들은 최근 배구를 중심으로 스포츠계 학교폭력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들불처럼 일자 뒤늦게 용기를 냈다. 이들은 관행이란 이름으로 학교 운동부 내 폭력 행위를 가슴 속 깊이 묻어둬야 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스포츠 학폭 미투의 폭로를 통해 드러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김 전 감독의 가해 행위를 다시 떠올리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고 있다.

김 전 감독은 폭행 의혹 등과 관련해 입장을 묻는 본보 질의에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윤한슬 기자
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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