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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라를 버린 우륵, 나라를 구한 류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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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라를 버린 우륵, 나라를 구한 류자명

입력
2021.02.24 20:10
수정
2021.02.25 09:35
0 0

박일선 동화작가

동화작가

동화작가



우륵은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중 한 사람이다. 얼마나 대단한 예술가면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겨레의 가슴을 울릴까. 그가 없는 민족 음악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륵은 가실왕의 총애를 받은 가야 사람이다. 나라가 어려워지자 왕이 만든 12줄 가야금을 훔쳐 신라로 달아났다. 진흥왕 배려로 국원(國原ㆍ지금의 충주)에 살면서 신라 제자들을 가르친다. 하림궁(河臨宮)에서 왕을 위한 공연도 하고 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로부터 곡을 배운 제자들은 '곡이 번잡하며 맑고 바르지 않다'고 비난하고, 12곡을 일방적으로 5곡으로 엮는다. 참으로 배은망덕한 자들 아닌가? 얼마나 우륵을 멸시했으면 삼국사기에 기록이 됐을까. 처음 바뀐 곡을 듣고 우륵은 노했다. 하지만 다섯 곡을 모두 듣고는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즐거우나 넘치지 않으며 애처로우나 슬픔에 빠지지 않는 좋은 음악'이라고 극찬한다. 이들 제자에게 연주를 양보해 왕의 기쁨을 얻을 기회까지 주기도 했다.

예술을 위해 망명해 살아가는 우륵의 신세를 김부식은 이렇게 묘하게 그렸다. 만약 가실왕이 기록을 남겼다면 우륵을 어떻게 기술했을까. 예술가 우륵을 계승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어려운 나라를 저버리고 적국으로 도망한 것도 본받아야 하나?

암울했던 조선말 충주에서 태어난 류자명은 일제에 맞선 독립 영웅이다. 그는 충주간이농업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중 만세운동을 조직하다가 발각되자 중국으로 망명한다. 북경과 상해, 계림 등 중국 대륙 곳곳에 목숨을 건 그의 족적이 흠뻑 남아 있다. 김원봉과 의혈단 투쟁을 주도하며 나약한 독립운동에 횃불이 된다. 1940년대 들어서는 해외 한인 혁명세력의 통합에 집중했다. 이념과 노선 차이로 사분오열된 독립운동 세력을 상해임시정부 중심으로 규합하는 데 앞장섰다.

항일투쟁을 이어가다 귀국 시기를 놓친 그는 귀향하지 못하고 중국에 남아 농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다. 그를 흠모하는 중국인들은 기념관과 동상, 기념촌까지 만들었다. 그는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훈장을 받은 유일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광복된 고향은 아직도 그가 낯설다. 충주는 100년 염원인 ‘서울~충주~부산’ 철도 개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충주역사(驛舍)설계가 막바지라는데, 그 중심 소재가 가야금이라고 한다.

어찌 지역을 대표할 가장 상징적인 공간을, 어려움에 빠진 나라와 왕을 버린 우륵의 가야금으로 설계하는가. 나라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면서 연대와 통합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 영웅 류자명으로 할 수는 없는가. 바야흐로 평화ㆍ번영ㆍ통일시대에 그의 정신을 안고 열차는 압록강을 건너 대륙으로 내달려야 한다.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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