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장문화 품은 핸드크림&립밤 출시?
사도세자 누나 쓰던 화장품 현대적으로 재해석
“K뷰티가 좋은 퀄리티로 각광받고 있지만, ‘어디서 온 것이냐’하는 물음 앞에서는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하더라고요. 화협옹주 화장품이 그 허전한 부분을 채울 대안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정용재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산전문대학원 문화재수리기술학과 교수는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지난해 9월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나인 화협옹주(1733~1752)가 사용하던 화장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제품을 내놓은 데 이어, 최근 대중에게 선보일 제품까지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껏 화협옹주 화장품 연구개발을 총괄해왔다.
애초 구상은 기억에 남는 굿즈(기념품)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대표작인 모나리자 그림과 관련된 굿즈가 많잖아요. 그에 비해 우리는 박물관과 연계된 상품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넥타이 등 품질 좋은 제품을 팔지만 스토리텔링이 있는 건 거의 없었죠.”
문화재 복원가인 그가 유물을 바탕으로 한 현대판 조선시대 화장품 제작 제안을 수락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 교수는 “유물이 현대사회와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해왔다. 발굴된 유물을 복원해 박물관에 보낼 때 느꼈던 한계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품은 수 년의 연구 끝에 탄생했다. 지난 2015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집 주변 밭을 갈던 농부의 신고로 발굴이 진행돼 화협옹주가 사용했던 화장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현대판 화장품 개발 사업이 이어졌다.
과거의 화장품을 현재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화장품 제조법이 적힌 문헌이 있으니 재료만 분석하면 재현하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좋은 레시피가 있다고 해서 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게 아니죠. 불 조절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비법이란 게 필요한데,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화장품을 만드는 장인이 없었어요.”
화협옹주가 실제로 사용한 화장품에서 납, 연백 등 더 이상 화장품 재료로 쓰이지 않은 중금속이 나온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정 교수는 “정말 있는 그대로 재현하면 쓸 수 없는 화장품이 된다”며 “홍화잎, 밀랍과 같은 전통 천연 재료는 살리고 나쁜 성분들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시중 판매용으로 개발된 제품은 핸드크림과 립밤 2종 세트(2만4,000원)다. 핸드크림은 보습효과를 지닌 전통 재료 동백나무씨오일을 사용해 만들었다. 증발해 버려 상상으로 채워야 했던 향은 조선왕실의 상징인 오얏꽃을 떠올려 오얏꽃향을 넣었다. 립밤은 예로부터 사용해온 밀랍과 전통 연지의 하나인 홍화 추출물을 넣어 생산했다.
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화장품이 청화백자 용기에 담긴 채 발견된 만큼, 연내엔 도자기에 담긴 고급 버전도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10월쯤을 목표로 도자용기에 담은, 한층 격을 높인 화장품 세트를 만들 겁니다. 앞으로 백화점에서도 판매되고, 국빈용 선물로도 활용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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