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숲길 걷다 보면....'뉴트로' 문화공간에 감성 커피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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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숲길 걷다 보면....'뉴트로' 문화공간에 감성 커피향

입력
2021.02.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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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담양읍, 3개의 숲과 예술 담은 이색 카페

담양은 읍내에 3개의 유서 깊은 숲을 보유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근대화의 상징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대나무의 본고장임을 자랑하는 죽녹원, 500년 역사의 관방제림.

담양은 숲의 도시다. 단순히 나무가 많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특징이 뚜렷한 3개의 숲이 도심을 감싸고 있어서다. 읍내 북쪽을 흐르는 영산강 제방에 관방제림이 있고, 그 위에 국내 최대 규모의 대나무 숲인 죽녹원이 자리한다. 동쪽에는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나들이객을 맞는다. 아무래도 푸릇푸릇하고 싱그러움이 넘치는 여름이 제격이지만, 겨울 숲의 매력도 덜하지 않다.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은 나무의 자태가 더욱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3개의 숲길을 걷다 보면 읍내 곳곳에 숲만큼이나 따스한, 레트로 감성으로 되살아난 담양의 근대 모습도 만나게 된다.


봄을 준비하는 3개의 숲, 본래의 자태 뽐내는 겨울 나무

담양의 숲 산책은 영산강을 가로지르는 향교교 남단에서 시작한다. 제방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강둑으로 나가면 다리 오른쪽으로 아름드리 숲길이 이어진다. 이름하여 관방제림(官防堤林)이다. 수해를 막기 위해 관에서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가꾼 숲이라는 의미다. 1648년 쌓은 제방에 200~300년 된 거목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1.6㎞ 산책로가 이어진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는 느티나무가 으뜸이고 가로수로는 은행나무를 많이 심는데, 관방제림의 주종은 이름이 다소 생소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170여그루 중 111 그루가 푸조나무다. 푸조나무는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고 병충해가 거의 없어 방풍림으로는 제격이다. 대신 추위와 대기오염에 약해 중부지역이나 대도시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담양이 그만큼 따뜻하고 공기가 맑은 고장임을 증명한다. 푸조나무 다음으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많고, 벚나무 엄나무 개서어나무 등이 섞여 있다. 봄이 오면 곧 연초록 잎사귀 사이로 꽃 향기가 강바람을 타고 번질 듯하다.

관방제림은 담양 읍내를 관통하는 영산강 남측 제방에 자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470년 역사의 관방제림은 주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이자 여행객의 산책로로 이용된다.


관방제림 국수거리의 멸치국수. 간편하게 한끼 때울 수 있는 서민 음식으로 요즘도 한 그릇 4,000원이다.

관방제림과 짝을 이루는 담양의 대표 음식이 국수다. 제방 아래에 전국 최대 규모의 죽세공품 시장이 있었고, 넉넉한 그늘은 자연스레 동네 사랑방이었으니 값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국수 가게가 번성했던 모양이다. 향교교를 기준으로 관방제림 반대편에 국수거리가 형성돼 있다. 멸치 국물에 양념 간장을 얹은 전형적인 서민 음식으로 한 그릇 가격은 4,000~7,000원 사이다. 여기에 대나무 향이 밴 삶은 계란(2개 1,000원)을 추가하면 간편하고도 든든한 한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관방제림에서 강 건너에 죽녹원(竹綠苑)이 자리 잡고 있다. 귀퉁이에 둥지를 튼 마을을 제외하면 낮은 산 전체가 대나무 숲이자 정원이다. 대나무로 먹고 사는 이 지역에선 모양과 쓰임에 따라 이름이 세분화돼 있다. 껍질이 다소 흰빛을 띠는 분죽은 조직이 단단해 주로 죽공예품 재료로 쓰인다. 굵고 아삭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맹종죽은 분죽과 함께 죽순으로 많이 먹는다. 이 밖에도 죽녹원에는 대나무 중 가장 굵다는 왕대, 마디가 볼록한 포대죽, 빛깔이 검은 오죽 등이 어우러져 있다.

담양 읍내 북측에 위치한 죽녹원. 낮은 산 전체가 대나무 정원이다. 올 겨울 극심한 추위에 잎이 말라 다소 누런 빛을 띠고 있다.


담양은 명실공히 대나무의 고장이다. 죽녹원 앞 도로변에도 꼿꼿한 대나무가 푸르른 운치를 뽐내고 있다.

죽녹원에는 8개 코스, 2.4km 산책로가 있다. 빼곡한 대숲이 바람을 막아 포근하고 아늑하다. 늘 푸른 대나무도 이번 겨울 몇 차례 혹독한 추위에 일부는 잎이 말랐다. 다소 누런빛을 띠고 있지만 봄이면 다시 푸르름을 되찾을 거라고 한다. 대숲과 어울리는 음식이 대통밥이고, 이와 짝을 이루는 메뉴가 떡갈비다. 향교교와 죽녹원 부근에 전문 식당이 여럿 있다.

읍내 외곽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한국의 대표적인 가로수길이다. 1972년 담양과 순창을 잇는 국도변에 심은 가로수가 높이 30m 가까이 자라 아름다운 정취를 뽐낸다. 지난 2000년 국도를 4차선으로 넓히면서 훼손 위기에 처했지만, 바로 옆에 새 도로를 내며 살아남았다. 약 2㎞ 아스팔트를 걷어낸 2차선 도로 양편으로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500여그루가 하늘을 찌른다. 길은 곧고 나무는 가지런하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에 흙과 숲의 감성까지 더해진 길이다. 소실점으로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련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담양 읍내 외곽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길도 나무도 점점 좁아져 아련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담양~순천 간 국도의 일부였다. 걷기길로 조성된 이곳 외에 옛 국도를 달리면 지금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볼 수 있다.


카페로 변신한 창고와 정미소, 예술창고로 거듭난 주조장

담양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 어디를 둘러보나 편안하다. 고층 아파트 대신 숲이 감싸고 있으니 걸음걸이도 한결 여유롭다. 숲길 산책 후 아늑하게 쉴 수 있는 특색 있는 공간이 곳곳에 있다.

관방제림 제방 아래에 3채의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카페와 전시장을 겸하고 있는 담빛예술창고다. 카페 입구에 한자로 커다랗게 ‘남송창고(南松倉庫)’라 쓴 간판이 남아 있다. 1960년대에 지은 미곡창고라는 표시다. 넓은 공간에 아날로그 감성을 입혔다. 내부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에 목조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홀 중간에 책장을 배치했고, 역시 넓은 창으로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한쪽 벽면은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장식하고 있다. 담양의 대나무가 아니라 필리핀에서 제작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실제 사용하는 악기인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쉬고 있다. 3개 건물 중 2채는 전시실이다. 입장료가 없어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넓은 공간을 활용한 프로젝트 작품은 관람객의 인증 사진 소품으로도 이용된다.

카페 겸 전시장인 담빛예술창고.1960년대에 지은 미곡창고를 개조했다.


담빛예술창고는 넓은 공간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높은 유리창으로 바깥풍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담빛예술창고 유리창에 관방제림 풍광이 액자처럼 걸렸다.


관방제림 입구에서 제방을 따라 약 1㎞ 내려오면 한적한 골목에 ‘정미다방’이 있다. 노출 콘크리트로 단장한 외벽에 ‘천변정미소, 전화 2285’라 쓴 간판이 걸려 있다. 1959년부터 운영하던 정미소를 개조한 건물이라는 표시다. 내부 장식에도 정미소 시설을 그대로 활용했다. 쌀이 이동하던 목재 통로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연결돼 있고, 도정할 벼를 붓던 마름모꼴 저장함은 대형 화분으로 변신해 공중에 매달려 있다. 기계별로 전기를 단속하던 옛날 스위치와 전화번호부도 소품으로 걸려 있다. 인근에 담양 우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카페 옆 허름한 골목 담장에 황소 그림과 함께 비석치기와 사방치기 등 옛날 놀이 그림이 장식돼 있다. 장마당을 뛰어다녔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담양읍 천변리 정미다방은 1959년 문을 연 천변정미소를 개조한 카페다.


정미소의 도정시설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한 정미다방 내부.

인근의 해동문화예술촌은 옛 주조장을 개조한 복합 전시 공간이다. 2010년 문을 닫은 해동주조장과 직원 숙소, 주변의 유류판매소와 교회까지 묶어 전시장과 창작 공간으로 꾸몄다. 옛날 건물의 규모를 그대로 살린 전시장은 작고 소박하다. 여러 개로 분리된 방마다 한 작가의 작품만 전시하고 있으니 몰입감은 오히려 뛰어나다.

천장 상량문에 ‘1968’ 연도가 선명한 건물에 옛 술도가의 정취를 보여 주는 공간도 있다. 허름한 함석지붕 건물 사진, 막걸리 발효에 필요한 온도를 유지해 주던 대형 연료 탱크, 주조장의 수원으로 사용하던 깊이 22m 우물까지 내부 전시실로 들어왔다. 누룩을 빚고, 술이 익는 장면을 디지털로 재현한 대목은 흥미롭지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술도가에서 술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남 각 지역의 막걸리 이름이 적힌 항아리도 있지만 맛은 볼 수 없다.

2010년 문을 닫은 해동주조장과 주변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개조한 해동문화예술촌.


해동문화예술촌의 디지털 양조장. 술 익는 모습과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지만, 술 냄새는 나지 않는다.


해동문화예술촌에서 가장 눈에 뜨는 건물은 옛 담양읍교회다. 예배당을 공연장 겸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옛 담양읍교회 예배당 바닥에 테라코타 군상 작품이 전시돼 있다.

교회를 개조한 전시장은 가장 이색적인 공간이다. 붉은 벽돌이 단아한 옛 담양읍교회 예배당으로 들어서면 벽면 양쪽으로 세로로 길쭉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은은한 조명이 비치고, 바닥에 ‘사람꽃-희로애락(김희상 작)’이 전시돼 있다. 인간사의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담은 테라코타 군상이 예배당을 가득 채운 모습이 생경하다. 십자가가 있어야 할 정면 벽에는 여러 종교의 상징물을 모은 콜라주 작품 ‘믿음에 관하여(조현택 작)’가 걸려 있다. 전시장 자체가 종교적 관용과 화합의 공간이다. 100년 역사의 담양읍교회는 바로 옆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해동문화예술촌의 모든 전시장은 현재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고향 사랑 듬뿍 담은 담양커피농장 '골드캐슬'

대나무 고을 담양에 또 하나의 명물이 생겼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운치를 뽐내는 금성면 소재지에 담양커피농장이 있다. 문을 연 지 5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담양 여행객이 일부러 찾는 명소로 성장했다. 4년은 자라야 열매가 열린다는데, 어떻게 가능할까?

임영주 담양커피농장 대표가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는 농장을 배경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담양커피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3월부터 수확을 할 예정이다.


일간지에서 사진기자로 재직한 임영주 대표는 은퇴 전부터 커피나무를 재배해 왔다. 서울의 베란다 화분에서 키우던 나무는 그의 은퇴와 함께 고향 땅에 뿌리를 내려 현재 비닐하우스 지붕 높이만큼 자랐다. 이 푸르른 농장을 배경으로 직접 수확해 발효한 커피를 볶고 갈아 내려준다. 커피 맛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입안에 맴도는 향기가 다르다는 걸 알아채기 어렵지 않다. 임 대표도 최대 강점으로 신선도를 꼽는다. 스스로 “근본 없는 커피”라 말하지만 겸손과 자신감의 표현이다. 두 사람 이상이 방문하면 한 사람에게는 농장에서 생산한 비싼(1만5,000원) 커피를, 다른 사람에게는 유명 수입산 커피(5,000원)을 권한다. 즉석에서 맛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담양커피농장의 커피는 ‘골드캐슬(Gold Castle)’이라는 브랜드로 팔린다. 지역명인 금성(金城)을 영어로 옮긴 이름으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작명이다.

임영주 담양커피농장 대표가 농장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웬만한 커피 상식은 거의 익힐 수 있다.


'나도 바리스타' 체험은 원두를 직접 볶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 과정이 포함된다.

농장이 있으니 체험도 구체적이다. 농장투어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나무를 보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커피에 관한 다양한 상식을 익힌다. ‘나도 바리스타’ 체험을 추가하면 원두를 직접 볶고 갈아 마실 수 있다. 열매가 발갛게 익어가는 3월에는 수확 체험도 한다. 커피 묘목과 꽃차, 잎차도 농장이 있기에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다.

담양=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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