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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저항하는 음악

입력
2021.02.24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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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라벨이 작곡한 '쿠프랭의 무덤' 악보 표지. 프랑스국립도서관 제공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라벨이 작곡한 '쿠프랭의 무덤' 악보 표지. 프랑스국립도서관 제공


이번 겨울 전세계 공연장에는 추모의 음악들이 종종 연주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침울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 사태에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음악은 지금 여러 기능 중에서도 추모에 집중하고 있다. 떠난 이들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망각에 저항한다.

추모의 본질은 기억이다. 기억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라진 자들을 떠올리고 추억한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음악인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2017)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했다. 제목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떠올릴만큼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작품의 모티브는 동일본 대지진이다. 끔찍한 재난으로 사라진 이름들을 애타게 부른다. 그들을 떠올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자연재해 중 하나였다. 전세계 예술가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생존자들을 위로했다. 일본의 작곡가 토시오 호소카와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관현악 작품들을 작곡했다. 그 중 '명상-2011 쓰나미 희생자들에게(Meditation-to the victims of Tsunami 2011)'는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전달했다.


2011년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왼쪽)이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과 함께 동일본대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연에 앞서 일본과의 유대감을 강조하고 있다. 베를린필 디지털콘서트홀 영상 화면 캡처

2011년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왼쪽)이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과 함께 동일본대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연에 앞서 일본과의 유대감을 강조하고 있다. 베를린필 디지털콘서트홀 영상 화면 캡처


같은 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사이먼 래틀도 일본을 추모하는 자선 연주회를 열었다. 그들이 골랐던 작품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이었다. 브람스 교향곡 중 가장 비극적인 작품이다. 사이먼 래틀은 "구체적인 지원책이 곧 마련되겠지만, 우선 음악가로서 음악을 통해 위로와 사랑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공연 취지를 설명했다. 자선 연주회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은 유니세프를 통해 수익금 전액을 일본에 전달했다.

2016년 한국을 찾은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역시 추모를 위해 예정에 없던 모차르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거룩한 성체)'를 연주한 적이 있다. 공연 며칠 전 발생한 중부 이탈리아 지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피해를 입은 가족과 소중한 이웃들을 떠올리며 음악으로 기도했다.

추모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평생의 걸작 '쿠프랭의 무덤'을 1차대전 직후 작곡했다. '쿠프랭의 무덤'은 6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모음곡이다. 전쟁 때 사망한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래서 각 악장에는 희생된 동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자크 샤를로, 장 크루피, 가브리엘 들뤼크, 피에르&파스칼 고뎅 형제, 장 드레퓌스, 조셉 드 말리아베. 라벨의 바람대로 이들의 이름은 잊히지 않고, 작품과 함께 기억되고 있다. 작품은 더욱 나아가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프랑스인들을 추모한다.

KBS교향악단이 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쿠프랭의 무덤'을 연주한다. 추모곡이긴 해도 프랑스 특유의 화려하고 밝은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프란시스코 발레로-테리바스는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이 작품은 프랑스 오케스트레이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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