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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동안 '플라스틱통' 끼고 다닌 떠돌이개의 생환기

입력
2021.02.25 10:00
수정
2021.02.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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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실?유기동물에 주어진 보호기간은 10일. 이 기간에 보호자를 찾지 못하면 동물의 생사여탈권은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간다. 구조부터 보호기간 종료까지 동물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또 보호기간이 끝난 이후는 어떻게 되는지 유기동물들의 생존기를 추적했다.


플라스틱이 머리에 낀 채 20여일을 돌아다닌 백구. 동물구조119 유튜브 캡처

플라스틱이 머리에 낀 채 20여일을 돌아다닌 백구. 동물구조119 유튜브 캡처


반려견도 유기견도 아닌 존재가 있다. 야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떠돌이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사람을 따르지 않고 민가에 피해를 줬거나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야생화된 유기견'이라 구분하지만 포획 후는 통상 열흘 동안 보호하고 이후 안락사하는 유기견과 같은 절차를 따른다.

동물구조전문단체 동물구조119는 지난해 10월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플라스틱 통을 머리에 낀 채 돌아다니는 흰 개(백구) 영상을 발견했다. 영상 게시자에 확인한 결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주택가에서 한 떠돌이개가 플라스틱 통에 가려 앞을 보지 못한 채 돌아다닌다고 했다.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는 당장 구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보고 떠돌이개의 구조를 결정했다.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발견된 떠돌이개들. 동물구조119 유튜브 캡처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발견된 떠돌이개들. 동물구조119 유튜브 캡처


허탕치고 다른 떠돌이개들만 확인

제보 이틀째인 지난해 11월 1일. 동물구조119 활동가들은 포획틀과 대형 포획망을 준비해 백구가 발견됐다는 장소로 향했지만 개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활동가들은 백구를 찾지 못했지만 대신 주변에 사는 다른 떠돌이개들을 확인했다. 지역 주민에게 백구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가끔 봤다"는 정도의 말만 돌아올 뿐 포획을 위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고, 구조는 다음날을 기약했다.

머리에 낀 플라스틱 제거전 백구의 모습. 앞을 볼 수도 물을 마시기도 어려워 보인다. 동물구조119

머리에 낀 플라스틱 제거전 백구의 모습. 앞을 볼 수도 물을 마시기도 어려워 보인다. 동물구조119


삼겹살까지 구웠지만 포획 실패

플라스틱 통 때문에 머리를 움직일 수 없는 백구는 먹기는커녕 물을 마시기도 힘든 상황.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질 수밖에 없기에 활동가들은 애가 타 들어갔다. 다음날 역시 허탕을 쳤고, 그 다음날인 11월 4일. 다시 현장에 도착해 주위를 살피던 중 임 대표는 작은 덩치의 떠돌이개를 발견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개는 마치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20m가량 앞서가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임 대표는 "개를 쫓아 400m 정도 갔더니 야산을 뒤로 한 양봉 농가 옆에 플라스틱통을 머리에 쓴 백구 1마리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서둘러 포획틀을 설치하고, 냄새로 유인하기 위해 포획틀 안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보통 개들은 삼겹살의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어하지만 플라스틱을 쓰고 있어 냄새를 잘 맡을 수 없었던지, 경계심이 커서였는지 백구는 포획틀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또 하루가 지나갔다.

지난해 11월 5일 플라스틱 통을 쓴 채 발견된 지 20여일만에 구조된 백구. 동물구조119

지난해 11월 5일 플라스틱 통을 쓴 채 발견된 지 20여일만에 구조된 백구. 동물구조119


밥 주던 주민이 내놓은 포획 해법

'삼겹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활동가들의 고민이 커졌다. 하지만 해법은 가까운데 있었다. 임 대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농가 주인에게 백구에 대해 물어보니 2년 가량 봐오며 때때로 밥을 챙겨줬다는 답이 돌아왔다. 특별히 살갑게 다가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농가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었다고 했다. 농장주는 자신에게는 경계심이 없다며 포획망을 들고 성큼성큼 백구에게 다가갔고, 큰 저항 없는 개를 손쉽게 포획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을 쓴 모습이 알려진지 20여일 만에 드디어 백구는 머리를 감싼 플라스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활동가들은 머리에 낀 플라스틱을 벗겨내기 앞서 백구에 시원한 물부터 줬다. 얼마나 목이 탔는지 백구는 벌컥벌컥 마셨다. 이후 플라스틱을 벗겨내는 작업이 진행됐고, 자유로워진 개는 습식사료(캔)를 보자마자 4캔을 뚝딱 해치웠다. 백구는 이후 1달가량 동물병원에서 지내며 건강을 회복했다.

동물구조119는 백구 외 주변에 사는 떠돌이개 6마리를 포획해 중성화 후 야생으로 돌려보냈다. 더 이상 개들이 늘어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동물구조119는 그동안 개들을 돌봐온 양봉 농가 운영자에게 개집과 사료 등을 지원하면서 방사한 개들의 적응 여부를 살피고 있다.

구조 후 병원치료를 마치고 다시 방사하기 전 백구. 동물구조119

구조 후 병원치료를 마치고 다시 방사하기 전 백구. 동물구조119


보호가 아니라 방사를 택한 이유는

임 대표가 구조 사실을 SNS에 공유한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과 비판은 "입양을 보내지 않고 왜 방사했느냐"는 내용이었다. 임 대표는 "물론 입양을 보내면 가장 좋지만 구조한 모든 떠돌이개를 보호소로 데려올 수도, 입양 보낼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지자체 보호소로 보내면 안락사 당할 게 뻔한데 그냥 잡아가게 둘 수 없어서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방안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고, 모든 떠돌이개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임 대표도 인정한다. 이번 사례의 경우 떠돌이개가 사람이나 가축에 위협적이지 않고, 이들을 간간이 돌봐줄 주민까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임 대표는 "번식장, 개농장, 도살장이 위치한 도농복합지역, 개를 중성화시키지 않은 채 풀어 키우거나 마당에 묶어 키우는 지역에 떠돌이개들이 늘어난다"며 "떠돌이개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반려동물을 등록하게 하고 집중적으로 중성화를 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치료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9일 방사된 백구가 새 집에 들어가 있다. 동물구조119

치료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9일 방사된 백구가 새 집에 들어가 있다. 동물구조119


'포획-중성화-방사-관리' 해법도 고민해야

전문가들도 떠돌이개의 무조건 포획과 안락사 보다 중성화 수술과 방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시와 떠돌이개 중성화 사업을 진행했던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홍콩, 부탄,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서 떠돌이개를 줄이기 위한 연구와 정책을 실시한 결과 이들을 포획해 안락사하는 방법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외 연구에서 중성화 수술 사업(TNR?포획, 중성화, 재방사)이 떠돌이개의 개체수 조절뿐 아니라 습성완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결과를 확인했다"라며 "국내에서도 유사한 정책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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