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호주 멜버른, 유럽 몇몇 도시를 누비는 노면전차(트램)를 볼 날이 올까. 복잡한 도로 사정, 후진성을 벗지 못한 교통 문화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지만, 현재 전국 13개 도시가 트램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특히 해당 도시들이 이구동성으로 트램 도입을 위한 평가 지침 변경을 요구하는 등 단체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곳곳에서 트램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2일 전국 각 지자체에 따르면 현재 트램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도시는 경기 성남시를 비롯한 부산, 대전, 인천, 대구, 울산, 수원, 고양, 창원, 부천, 시흥, 청주, 구미시 등 13곳에 이른다.
부산 대전 트램 '가시권'
이들이 트램 도입에 나선 데에는 우선 친환경성, 편의성, 경제성이 꼽힌다. 각 지자체에 따르면 트램은 순수 전기만을 이용해 대기 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또 전용도로를 이용해 정시성이 뛰어나고 승객들의 접근성도 버스처럼 높은 수준이다. 특히 차고가 낮아 사실상의 평면 이동이 가능해 노인과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또 한번에 약 200명(5개 차량 1편성 기준)을 수송하는 트램 노선 공사비는 1㎞당 200억~300억원 수준으로, 1,000억원이 들어가는 지하철 4분의 1수준이다. 지자체들이 트램에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장 앞선 곳은 부산이다. 2023년 운행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1899년 서울 종로 등지에 설치한 트램이 1968년까지 운행하긴 했지만, 이 사업이 완료될 경우 부산은 현대적 트램 첫 도입 도시가 된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낮은 경제성 때문에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지난 2018년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면서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빠른 사업 속도를 보이는 노선은 오륙도선이다. 경성·부경대~이기대 입구~오륙도 5.15㎞ 구간으로, 11개 정거장이 들어선다. 사업비는 1,978억원으로 추정된다.
부산과 함께 예타 면제를 받은 대전시는 상대적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본선(서대전~정부청사~서대전) 33.4㎞, 지선(동부~동부여성가족원) 3.2㎞ 등 2개 노선이다. 정거장 35곳, 차량기지 1곳이 들어선다. 사업비는 7,491억원으로 2023년 착공, 2027년에 완공한다는 목표다.
신도시 많은 성남 수원 도입에 적극적
수도권의 성남시와 수원시가 적극적이다. 신도시 건설과 맞물려 인구가 늘고 있는 곳들이다. 성남시는 판교역~모란역~성남산업단지(1호선)와 판교테크노밸리~판교역~정자역(2호선) 등 2개 노선을 추진 중이다. 수원시도 총사업비 1,700억원을 들여 수원역~팔달문~kt위즈파크~북수원복합환승센터까지 약 6.5㎞ 구간에 12개의 정거장 신설계획을 세웠다. 현재 예타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2,500억원이 들어가는 부천시 트램 사업은 송내역을 출발, 상동역과 부천체육관, 신중동역을 순환하는 구조로 추진되고 있다. 고양시는 정부의 광역교통망대책 일환으로 고양시청~식사까지 계획된 상태다. 이 밖에 창원시는 마산~창원중앙과 창원~진해, 월영광장~진해구청 등 3개 노선을 계획하고 있으며, 청주시는 청주가경터미널~상당공원까지 이어진 후 청주대와 육거리시장 2개로 나눠지는 노선을 계획을 수립한 상황이다. 구미시는 군위·의성 신공항과 연계한 사전타당성조사를 추진 중이다. 광역단체인 대구시는 사전타당성조사를 진행하면서 노선망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인천은 부평~인천역~연안부두 등 3개 노선을, 울산은 태화강~신복로터리 등 4개 노선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부산, 대전처럼 예타 면제를 받지 못한 11개 도시들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 동력을 쉬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평가 지침 변경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나선 이유다. 실제 국내에서는 신개념의 교통수단인 트램이 ‘철도’로 규정돼 있는 바람에, 제아무리 평가를 잘 받아도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구조다. 연구용역 기관들이 기존 평가 지침에 따라, 친환경성과 쾌적성, 환승편의성 등 트램의 최대 특성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 덫에 걸린 신교통수단
은수미 성남시장은 “최근 11개 도시 이름으로 국토교통부에 트램 평가 지침 개정 촉구 서한을 보냈다”며 “국토부와 기재부 등은 물론 중앙정부부처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법률개정 및 정책개선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긍정 적극 검토”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국토부의 교통시설투자평가지침이 개정되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지침도 자연스럽게 변경된다.
11개 도시의 요구가 관철돼 국토부의 평가지침이 개정된다 해도 적지 않은 문제가 남는다. 과연 국내 교통 여건에서 트램이 버스나 택시, 일반 자동차들과 섞여 달리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기존의 버스와 택시, 승용차를 진입을 제한해 교통 혼잡을 최소화하고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않을 경우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전기버스 도입이 더 저렴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정화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교통 인프라는 구축해야겠고, 도시철도는 비싸서 못 지으니 그나마 싼 트램으로 교통을 확충해 보자는 식이면 곤란하다”며 “선진국의 경우 도심에 트램을 도입하면서 버스나 승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도심 속 교통의 혼잡을 낮췄고, 그것이 지역경제활성화, 편리한 교통 인프라로 이어진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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