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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보수 논객이 남긴 것

입력
2021.02.2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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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인 러시 림보가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은 뒤 엄지를 치켜올리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암 투병 끝에 7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인 러시 림보가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은 뒤 엄지를 치켜올리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암 투병 끝에 7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사회가 한 보수 논객의 죽음을 놓고 다양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인공은 조금은 생경한 러시 림보. 한 세대에 걸쳐 미 보수층을 열광시킨 인물이다. 좌파와의 30년 싸움의 증인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가 지난 주 향년 70세로 타계하자 플로리다주는 장례식에 맞춰 조기를 게양하겠다고 발표했다. 1988년부터 그가 진행한 라디오 뉴스쇼는 하루 3시간 동안 전국 600여 라디오 방송사 전파를 탔고, 일주일에 1500만명이 귀 기울였다.

□ 림보는 라디오 프로를 기성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대리 표출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만들었다. 백인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속내를 대신 토해내는 림보에 흥분했다. 그러나 림보는 갈수록 편향된 극단적 주장을 걸러내기 보단 그 확성기가 됐다. 그에게 코로나19는 감기에 불과한 음모였고, 경제 불평등을 우려한 교황은 공산주의자였으며, 오바마는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다. 림보가 우파 최고이자 최후 전사로 활약한 대가는 확실했다. 한때 한 해에 6,600만달러를 벌어들였을 정도다.

□ 보수층 영향력에서도 종종 1위로 조사될 만큼 림보의 위상은 커졌다. 자신이 원할 때 뉴스를 만들고, 법안을 폐기시킬 수 있다는 말까지 따라 붙었다. 하지만 좌파 입장에서 림보는 미국을 병들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넘쳐나는 추종자들을 정체성 정치로 이끈 선동가이기도 했다. 실제 그의 확신에 찬 거짓말,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의 결과는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반페미니즘으로 연결됐다.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등장 배경에도, 극우 세력의 의회 난입에도 림보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 무엇보다 우려되는 림보의 유산은 극단주의다. 그의 부음이 이를 약화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 공화당은 그 청산을 놓고 내전 중이지만, 자정기능이 강화된 증거는 찾기 힘들다. 보수가 극단주의를 수용했을 때 나치가 출현했던 것처럼 미국 정치를 흔들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는 당장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림보가 자신의 죽음으로 틀렸음을 증명한 유산은 하나 있다. 그는 수십 년 시가를 즐기며 흡연의 위험성을 부인했는데 결국 폐암으로 숨졌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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