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는 규제 혁신이고, 재임하는 동안 그 성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음달 24일 퇴임을 앞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7년 8개월간의 임기 소회를 밝혔다.
정부와 국회에 규제 완화를 강력히 요청해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기도 했던 박 회장은 “‘이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국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법과 제도를 우회해 먼저 일을 벌이고, 시장에서 실증을 통해 법과 제도를 바꿀 당위성을 찾자는 것이 샌드박스였다. 실제로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어 박 회장은 “청년 창업가들에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안 된다는 얘기를 하다 보면 미국, 유럽의 청년들은 듣지 않아도 될 말을 우리 젊은이들은 왜 들어야 하나 싶어서 정말 미안했다”며 “내가 샌드박스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규제 완화 물꼬를 트는 데 큰 변화를 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최근 이익공유제 등 분배 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정의 역할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좋든 싫든 분배를 강화하고 그늘에 있는 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국가가 먼저 재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노력하고, 양극화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민간에서도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자신의 후임을 맡게 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5대 그룹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데, 아무래도 그 정도 규모의 총수가 들어오면 대변하는 영향력도 커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서울상의 회장단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최 회장은 미래산업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나보다 미래 방향에 대해 훨씬 잘 대변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박 회장은 재임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론 프란치스코 교황 접견ㆍ평양 방문과 함께 국회를 누빈 일화를 꼽았다.
그는 “의원회관 안에서만 하루에 7㎞를 걸은 날도 있었고 셔츠가 땀에 젖어 갈아입거나 무릎이 아파서 테이핑을 하고 간 날도 있었다”며 “국회와는 애증의 관계”라고 회상했다.
퇴임 이후 활동을 묻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서 더 없이 좋은 계획인 ‘무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일단 두산인프라코어 이사회 의장 역할과 소임을 끝까지 다하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 고민해보겠다”고 설명했다.
정치는 절대 안 한다고 선을 그은 박 회장은 “나 같은 기업인은 사고가 수십 년 동안 효율과 생산성, 수익성으로 굳어져 있어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기업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대신 청년 사업가들이 도움을 청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나서서 돕겠다고 했다.
한편, 서울상공회의소는 23일 임시 의원총회를 열고 박 회장의 후임으로 단독 추대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한다. 관례상 서울상의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을 겸하게 되며, 최 회장은 내달 24일 열리는 대한상의 의원총회를 통해 정식 임명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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