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바로미터' 격전지 3개 동(洞) 가보니
서울 양천 목3동·성동 사근동·마포 염리동
"거기서 거기..." 부유하는 부동산 민심
겨울이 머뭇머뭇 떠나가며 뿌린 마지막 추위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관심마저 얼어붙게 한 듯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를 묻자, 대체로 냉랭한 답이 돌아왔다. "다 거기서 거기다."
한국일보는 '서울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동(洞) 3곳을 추린 뒤 찾아가 민심을 들어봤다. 지난해 4월 21대 총선 때 서울 지역 정당투표 결과와 가장 비슷한 개표 결과를 보인 양천구 목3동, 성동구 사근동, 마포구 염리동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정당'을 선택하는 정당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 계열인 더불어시민당이 미래통합당 계열 미래한국당보다 0.1%포인트 많은 표를 얻었다. 당시 사근동의 양당 득표 차이는 0.97%포인트였고, 목3동은 0.87%포인트, 염리동은 2.78%포인트였다. 지역구 후보 투표는 인물 경쟁력 등 변수에 좌우되기 때문에, 민심의 기준을 정당투표 결과로 잡았다.
민심 채집은 '거리 약식 면접조사' 방식으로 했다.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17일 출퇴근 시간대인 오전 7~9시, 오후 6~8시 서울지하철 9호선 등촌역·2호선 한양대역·5호선 공덕역 주변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정부 대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기' '지지하는 보궐선거 후보와 이유'를 각각 물었다. 대상은 각 동 거주자 10명씩, 총 30명이다.
최대 관심사 부동산 이슈에 '냉랭'
응답자들은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유독 냉랭하게 반응했다. 30명 중 23명이 "정부 대책이 잘못됐다"거나 "이제는 체념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정부 대책이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한 답변자는 2명, "모르겠다"거나 "관심없다"고 답변한 사람은 5명이었다. 부동산은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여론조사(이달 4~6일 실시)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49.7%)가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가장 관심이 간다'고 꼽은 이슈다.
'코로나19 유행이 초래한 경제 위기와 정부 대책에 대한 평가'를 묻자, 시민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거나 "정부가 선방했다"는 답변이 10명, "정부 대처가 충분치 못하다"는 답변이 13명으로, 평가가 팽팽히 갈렸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핵심 요인 중 하나인 'K방역의 마법'이 작동한 것도 아니지만,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K방역 실패론'에도 시민들이 동조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를 지지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유보한 응답자가 많았다. "거기서 거기"라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답변을 한 사람이 12명이었다. 여권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답변과 보수 야권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은 엇비슷하게 나왔다.
①구도심 목3동:부동산 '양극화'에 분노...유동하는 부동산 표심
"정부는 기다리면 집값이 내려간다고 했는데, 현실은 반대였다." 오전 7시 50분, 등촌역 4번 출구를 향해 걷던 회사원 최모(32)씨의 말이다.
목3동 주민들이 전한 '부동산 분노'의 키워드는 '양극화'였다. 목3동은 51년 역사의 전통시장인 깨비시장을 한가운데 품고 있는 양천구의 대표적 구도심이다. 4, 5층 규모의 다세대주택이 주거지의 주를 이루는데, 2005년 완공된 1,076가구의 '롯데캐슬위너' 아파트 단지가 섬처럼 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06년 1월 5억원대에 거래되던 이 아파트(84.94㎡) 가격은 지난 1월 11억원대까지 상승했다.
수십 년간 거주한 토박이일수록 양극화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20대때부터 깨비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A(57)씨는 "저는 빌라에서 쭉 살았는데, 같이 시작했어도 아파트는 몇 배나 오른 반면 빌라는 거의 변화가 없어 처량한 마음도 든다"며 "여기엔 정부의 대처 탓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부동산은 '균열'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3040세대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주부 박모(48)씨는 "정부가 집값을 너무 올려놨다. 차라리 시장경제에 맡겼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마음이 야권 쪽에 쏠려 있다고 했다. 직장인 B(39)씨는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오르는 걸 보면 진짜 대책이 맞긴 한가 싶다"면서도 "아직 누굴 찍을 건지는 유보"라고 했다.
②대학가 사근동: "민주당 괘씸" vs "야당도 안돼" 20대는 혼란스럽다
"박원순 전 시장이 그런 문제를 일으켰는데도 민주당이 후보를 낸다는 게 괘씸하다." 오전 8시 30분, 직장인들의 발길이 한산해진 한양대역을 지나 학교로 향하던 대학생 이모(26)씨의 말이다.
사근동은 한양대 대학가를 끼고 있어 청년층 인구 비중이 높다. 지난해 서울시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사근동 인구 1만3,423명 중 5,766명(약 43%)이 20대다. 과거엔 진보 정당 텃밭이었지만, 최근엔 접전지로 변모했다. 민주당은 2012년 19대 총선 때 사근동 정당투표에서 41.9%를 득표했으나, 20대 총선에선 29.34%, 21대 총선에서 29.87%를 얻었다.
이런 추세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20대 C씨는 "이번 선거의 귀책 사유가 결국 민주당에 있는 것 아니냐"라며 "정당을 떠나 일자리 정책을 잘 내놓는 후보에게 투표하려 한다"고 했다.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20대 D씨는 "탄핵된 대통령을 배출한 야당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방학이지만 학생회 활동을 위해 서울 자취방에 남아있다는 이지윤(22)씨는 "국민의힘엔 아직도 거부감이 든다"며 "박 전 시장이 잘못하긴 했지만, 지금 후보들의 잘못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했다.
③염리동: '스윙동' 무게추는 3040에...부동산 비판도 결이 다르다
"반전세를 선호하는데, 매물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이니 부동산도 시장에 자연스레 내버려두는 게 맞는데 정부가 시장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렇다고 야당은 안 뽑을 것 같다." 시청 부근에 직장이 있다는 이모(35)씨는 이렇게 말했다.
마포갑 지역구에선 최근 세 차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내리 당선됐다. 그중에서도 염리동은 여야 지지가 매번 바뀐 '스윙보트' 지역(동)이다. 18대 총선 이후 염리동 정당투표 승자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민주통합당→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더불어시민당으로 바뀌었다.
인구 구성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3040세대다. 지난해 서울시 주민등록인구 통계에서 염리동 인구 1만2,913명 중 4,306명(약 33%)이 3040세대였다. 염리동 내 재건축을 마친 1,694가구의 재건축 아파트인 '마포프레스티지자이'에 3월부터 입주가 시작돼, 3040세대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응답자들의 불만의 촛점은 부동산에 향해 있었지만, 속내는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랐다. 주택을 보유자들은 정부·여당의 부동산 보유세 강화 기조를 비판적으로 봤다. 최모(49)씨는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순리대로 가야 한다. 집 한 채라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민주당을 뽑을 리 없다"고 했다.
집값 상승에 대한 불만이 꼭 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강남에 있는 회사로 출퇴근하는 이모(44)씨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집이 너무 가격이 올랐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야권 후보를 지지하냐'는 질문에는 "구시대적 모습이 여전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일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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