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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클럽하우스'에서 배운 것

입력
2021.02.16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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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앱. AP 연합뉴스

클럽하우스 앱. AP 연합뉴스


음성으로 여러 사람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앱 클럽하우스가 인기다. 주제를 정하고 방을 열어서 여럿이 함께 이야기하는 앱이다. 아이폰으로만 사용 가능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시대 '수다 본능'을 충족시킨 이 앱을 깔려고 중고장터에서 아이폰을 사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대기업 CEO의 강연도 벌어지고 연예인들도 즐비하다.

내가 클럽하우스 앱에서 접한 가장 유쾌한 수다방은 성대모사나 유명 개그맨이 연 방이 아니었다. 서로 친한 시각장애인들이 모인 방이었는데 어찌나 입담이 좋은지 본인들끼리 "입 근육만 발달했다"고 할 정도였다. "입으로 가위바위보, 윷놀이도 해요. 야구도 입으로 하는걸요."

잠시 헷갈렸다. '입 근육 발달'이 시각장애인들이 지닌 특출한 능력인가? 수줍고 말수 적은 시각장애인도 있었다. 능력주의를 비판한 마이클 샌델의 책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장애인의 신체적 능력을 평가하는 건 장애를 '부족함' '결핍'으로 받아들이는 거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시각장애인들의 '능력'에 놀란 것도 결국 내가 이들과 많은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며 장애 자체가 결핍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교류될 기회 자체를 아예 막아서 장애됨을 결핍으로 느끼게 만드는 세상이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휠체어를 타는 내 딸은 초등학교 내내 현장체험학습을 싫어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빙 돌아서 다니느라 체험학습 때마다 친구들과 떨어져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체험학습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학교 밖이 아닌 공간에서 아이가 다닐 기회가 박탈되는 걸 뜻하고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도 우리 아이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미리 지도를 보고 경로와 소요시간을 잰 후 아이와 몇몇 친구가 그 시간만큼 먼저 출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아이에게는 휠체어 경로를 아예 알려줬다. 무의가 제작한 서울 4대문 안 현장체험학습 경로지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것이다. 200여명의 비장애인 자원봉사자들이 휠체어를 직접 타고 가본 정보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경험이 '이해의 판'을 깔았다. 건축설계를 한다는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경사가 가팔라도 수동 휠체어로는 가기 힘드니 현장 설계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야겠어요." 2시간 휠체어를 탄 경험이 설계자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고민하는 나조차도 시각장애인 여러 명과 한꺼번에 수다 떠는 경험을 한 건 클럽하우스가 처음이었다. '말로 윷놀이하는 방법'만 배운 게 아니다. 이미 일부 방, 소수자들이 포함된 방에서 지키는 규칙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앱 화면에서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발언시 이름 먼저 소개하고 끝날 때는 '이상입니다'라고 말하는 거다. 시각장애인이 없는 곳에서도 이 규칙을 적용하고 왜 적용하는지 인지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인식 변화다. 물론 이 앱은 현재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아예 접근이 힘들지만 문자로 대화 내용을 알려주는 기능도 미국에선 나온다고 하니 지켜보자. 장애인, 비장애인이 어울릴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든, 휠체어가 접근가능한 엘리베이터를 지하철에 설치하든 일단 마주할 수 있는 판을 깔고 보자. 그 속에서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한층 넓어질 것이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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