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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물이 아닙니다

입력
2021.02.15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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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라이더들이 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배달라이더를 무시하는 갑질아파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배달 라이더들이 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배달라이더를 무시하는 갑질아파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화물엘리베이터는 못 탑니다. 손님에게 내려오라고 할게요." 가슴 속의 말을 경비노동자에게 내뱉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저질렀다. 말을 하기까지 망설였던 5초의 시간이 하루처럼 길었다.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메스꺼웠다. 떨리는 손에는 배달 음식이 들려 있었다. 고급아파트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배달노동자는 범죄 예방을 위해 이름과 연락처를 써야 하고, 흉기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헬멧을 벗어야 한다. 주민들과 마주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데,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지저분한 화물승강기에 태운다. 눈에 띄지 않아야 할 존재가 말을 하니 소동이 벌어졌다.

전화를 받은 손님이 거친 목소리로 내려온다고 했다. 승강기의 숫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9.8...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1.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성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거칠게 물었다. "화물엘리베이터에 타라고 해서요"라고 답했다. 손님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는지 욕설이 나왔다. "시X 그딴 일로 사람을 오라 가라 해. 경비 뭐 하고 있어 신고해." 말은 거칠게 했지만, 왜 욕을 하시냐는 항의에 자신이 없었던지 음식만 낚아채 올라가 버렸다. 손님이 화가 난 이유는 자신이 산 물건이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종종 주소를 잘못 적은 손님이 배달 라이더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와 제대로 된 주소를 보내주면 되는데 자신만 아는 건물이 보이지 않냐고 소리치거나, 배달하는 사람이 그것도 못 찾아오냐고 핀잔을 준다. 이럴 때면, 손님이 아니라 내가 잘못했나라는 착각이 든다. 부드럽게 넘기면 되는데, 서비스 정신이 부족해 손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아닐까? 사실 항의도 배달이 많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다음 배달이 있다면, 화물 승강기든 뭐든 일단 태워주기만 하면 감사하고 주소를 잘못 썼든 말든 손님이 전화만 받아줘도 고맙다. 싸움도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얼마 전 손님이 주소를 잘못 적어 한참을 헤맨 라이더가 두 번 배달을 하게 했으니 배달료를 추가로 달라고 손님에게 요구했다가 폭언을 들은 사건이 있었다. "그딴 식으로 돈 벌지 마라"로 시작된 폭언은 "공부를 못하니까 배달이나 하지"라는 직업 비하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폭언을 한 사람의 직업이 학원셔틀도우미로 드러나자 "셔틀도우미 주제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피해자는 마침 라이더유니온의 조합원이었고, 우리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만을 원한다고 선을 그었다. 갑질 문제는 악마 같은 개인을 없앤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원 주제에'라고 말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 '셔틀도우미 주제에'인 사회에서는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갑질 문제의 해결은 물건 취급을 받는 존재들이 스스로 말할 때 시작된다. 말할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뭉쳐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곳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마침 배달노동자의 노조 라이더유니온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갑질 아파트를 진정했다. 이후 화물 승강기 탑승을 거부하고, 손님에게 내려오라고 했다는 조합원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한번 터져 나온 목소리를 주워 담기는 힘들다. 자극적 사건 대신 당당한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린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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