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의장 "재산 절반 기부" 서약 화제
버핏·게이츠 주도한 '기빙 플레지' 떠올라
설 연휴를 앞두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8일 카카오와 계열사 전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에서 그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며 "다짐이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런 김 의장의 '기부 선언'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라는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규모 면에서도 현재 김 의장이 보유한 카카오·케이큐브홀딩스 주식의 현재 가치 기준으로 약 10조원에 이르는 자산 중 최소 5조원를 기부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재계에서는 유례가 없는 수준인데요.
해외에서는 김 의장처럼 자산 규모가 수십억달러를 넘는 유명 기업인과 그 일가가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 약정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 의장의 이번 선언이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비슷한 '기부서약'이 한국의 재계로도 번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전망 때문이죠.
버핏·게이츠 '큰 기부 약속'에 200여명 동참
'세계 최대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2010년 8월 총 40명의 억만장자들을 모아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라는 운동을 제창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생전에 기부하자는 서약을 했는데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참여한 자선가들은 직접 기부의 내용을 작성하고 서명한 뒤 그 내용을 대중에 공개합니다. 해마다 참여 인원이 늘어나 현재는 24개 나라 218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해요.
기빙 플레지 명단에 현재까지 이름을 올린 인물 중에는 '사우디의 버핏'이라는 별칭이 있는 알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 왕자, 기업가 출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CEO,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 부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와 부인 프리실라 챈 등이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2019년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의 전 부인으로, 아마존 보유 지분의 가격 상승으로 올해 순자산이 단숨에 600억달러대까지 치솟은 자선사업가 매켄지 스콧입니다.
스콧은 베이조스와 이혼한 그해에 바로 기빙 플레지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지금까지 인종, 성별, 경제적 불평등 등을 의제로 활동하는 미국 전역의 비영리단체 384개에 총 58억3,000만달러(약 6조4,800억원)를 기부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시기는 늦었지만 실제 기부를 결행하는 속도는 가장 빠른 편이라고 해요.
스콧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빈곤층이 경제적 손해를 보면서 자산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사회 환원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평생 모은 80억달러 내놓은 '기부의 전설'
포브스에 따르면, 기빙 플레지 운동을 주도한 워런 버핏 회장과 빌 게이츠-멀린다 게이츠 부부는 생존 기업가 가운데 일생 동안 가장 많은 사재를 기부한 자선가입니다. 지금까지 버핏 회장은 순자산만으로 428억달러(약 47조원), 게이츠 부부는 298억달러(약 33조원)를 내놨는데요. 양측 모두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기로 약정했다고 하니 놀랍죠.
게이츠 부부와 버핏 회장은 2000년 설립된 세계 최대 자선단체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이사진이자 공동 사재 출연자입니다. 당초 '버핏 재단' 등 자신과 가족이 설립한 재단에 기부해 오던 버핏 회장은 2006년부터 게이츠 부부의 비전에 뜻을 같이하며 자신이 보유한 버크셔해서웨이 지분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게 됐다고 해요.
게이츠 재단의 운영을 맡은 게이츠 부부는 미국 내에서는 교육 사업, 국제적으로는 보건 의료와 빈곤 퇴치 사업에 기부를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대응 백신 개발이 절실한 지난해 게이츠 재단은 전 세계에서 진행된 백신 개발 사업에 총 17억5,000만달러(약 1조9,400억원)를 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버핏 회장과 게이츠 부부가 사실상 전 재산 기부를 약정하도록 영감을 준 인물은 공항 면세점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인 억만장자 찰스 피니입니다.
1982년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재단을 설립하면서 자신이 보유하던 기업 지분 전체를 재단에 맡겼는데요. 그마저도 1997년까지는 기부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부쳤습니다.
지금까지 피니가 기부한 금액은 80억달러(약 9조원)에 이른다고 해요. 현재 그는 은퇴 후 생활을 위해 200만달러(약 22억원)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했고 지난해 9월에 애틀랜틱 재단마저 해체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가들의 기부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기업인들이 사재를 털어 공익재단을 만드는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현대차정몽구재단'을 설립해 사재 8,500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 장학사업, 예술분야 등에 기부하도록 하고 있고요.
이건희 삼성전자 전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8,100억원의 기부액을 형성해 장학사업 등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2016년 총 3,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서경배과학재단을 세워 과학 연구자를 지원한다는 목표 아래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이처럼 우리나라 기업주들이 정기적으로 기부 활동에 나서고는 있지만 전 재산의 '반액 혹은 전액을 기부한다' 같은 약정을 하거나 결행하는 사례는 드뭅니다. 대부분 기업 차원에서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일부는 그 과정도 해당 기업이나 총수 일가에 대한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이에 따른 사법처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빠진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기부 카드를 꺼내든 것인지라 그 취지의 순수성 자체에 물음표를 다는 이들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사재를 순수하게 내놓은 사례도 없진 않습니다.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지난해까지 카이스트에 766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사실상 전 재산에 해당한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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