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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중국의 백신외교

입력
2021.02.14 10:00
수정
2021.02.14 18:0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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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정
민원정칠레 가톨릭대 교수

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곳. 10여년 전에는 한국도 베네수엘라 모델을 따라야 한다더니 요즘엔 베네수엘라 꼴 날까봐 걱정들이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교수가 중남미의 제대로 된 꼴을 보여 준다.

중국이 남극 킹조지섬에 건설한 장성기지 전경. 킹조지섬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칠레다. 진동민 전 한-칠레 남극협력센터장(한-뉴질랜드 남극협력센터장) 제공

중국이 남극 킹조지섬에 건설한 장성기지 전경. 킹조지섬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칠레다. 진동민 전 한-칠레 남극협력센터장(한-뉴질랜드 남극협력센터장) 제공


애초에 사경을 헤맬 정도가 아니라면 입원은 불가능했다. 작년 5월 범아메리카보건기구가 예측한 대로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은 코로나19의 세계적 진원지가 되었다. 멕시코와 페루 등에서는 자가치료 중인 코로나19 환자의 가족들이 산소통을 충전하기 위해 노숙도 마다않는 모습이 전해졌다.

별다른 해결책이 없는 중남미 국가들은 백신이 절박했다.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중국과 러시아 백신의 3상 실험이 진행되었다. 중국이 백신 외교에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백신의 효능과 안정성에 대해서도 의혹이 이어졌다. 작년 말 칠레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의 우선 접종을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 1월 칠레 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중국 시노백 백신을 맞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산 백신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통령과 보건부 장관도 시노백 백신을 맞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칠레감염협회는 시노백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홍보를 이어 가는 중이다.

중남미에서 중국 백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가격이 저렴하고 운송과 보관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용 가능한 백신의 50% 이상은 선진국들이 이미 사들였기 때문에 중남미 국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밀어 공백을 메우는 수밖에 없다. 볼리비아에서는 백신 수송 차량에 문제가 생겨 백신이 닭고기 운반 차량으로 수송되는 일이 발생했다. 멕시코는 자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에 합의했으나 현재 사용 가능한 것은 미국의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 백신뿐이다. 화이자 백신에 의존하려던 칠레도 중국 시노백 백신 덕에 대규모 접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나마 등은 접종 개시에 의의를 두고 있다. 결국 코박스는 중남미 및 카리브해의 36개국에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백신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 틈을 파고드는 중이다.


중국이 남극대륙에 건설하거나 계획중인 기지. 진동민 전 한-칠레 남극협력센터장(한-뉴질랜드 남극협력센터장) 제공

중국이 남극대륙에 건설하거나 계획중인 기지. 진동민 전 한-칠레 남극협력센터장(한-뉴질랜드 남극협력센터장) 제공


중국은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중남미에 공을 들였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중남미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국이 되었다. 중남미 여러 국가의 주요 구매국이기도 하다.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며 중국이 중남미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지경이 되었다. 중국 은행들의 직·간접 참여를 통한 중남미 진출도 증가 추세에 있다. 중국의 대중남미 투자는 단순히 경제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중남미 23개국의 대학 및 고등학교 53곳에 들어선 공자학당을 통해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보급 중이다. 푸단대학은 2017년부터 중남미의 13개 명문대학들과 '푸단-라틴아메리카 대학 컨소시엄(FLAUC)'을 조성해 전 학문 분야에 걸친 학술회의와 학자 간 교류를 통해 네트워크를 조성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은 중남미에서 미국을 정치적으로 밀어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육·해·공 자원의 보고이면서도 재원과 기술력이 부족한 중남미 국가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어 중국이 필요하게 한다. 고도 5,000m에 세워진 세계 최고의 망원경 ALMA와 남극 장성기지에 투자를 늘리고 우루과이와 협력하여 남대서양을 조사 중이다. 생태계 모니터링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환경 변화를 예측하여 미래의 식량·산업 자원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브라질에 사는 지인은 말한다. 백신의 효능이 좀 낮으면 어떠냐고, 안 맞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중국이 백신 외교를 통해 미국의 턱밑에 있는 중남미를 파고들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지구본을 뒤집어보면 중국산 효자손을 둔 중남미의 턱밑에 미국이 있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서울대 규장각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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