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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코로나 설맞이, 종갓집도 '나홀로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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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코로나 설맞이, 종갓집도 '나홀로 차례'

입력
2021.02.09 16:00
수정
2021.02.09 16:0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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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 수십명 도열·잔 올리는 풍경 보기 어려워

지난달 20일 영상으로 이루어진 퇴계선생 불천위 제사에서 제관이 노트북(왼쪽) 화면으로 보여지는 종택에서 차린 제사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안동시 제공

지난달 20일 영상으로 이루어진 퇴계선생 불천위 제사에서 제관이 노트북(왼쪽) 화면으로 보여지는 종택에서 차린 제사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안동시 제공

신축년(辛丑年) 설에는 명문 종가 사당에서 후손들이 차례를 올리는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정부의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방침에 따라 마을손님은 물론 외지에 살고 있는 직계 자손들에게도 방문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종갓집을 지키는 종손 혼자 또는 종손과 그의 맏아들 정도만 사당에서 간소한 차례상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기로 했다.

경북 안동시의 퇴계 종택 측은 이번 설에는 종손 이근필(89)옹과 차종손(차기 종손)만 사당에 잔을 올릴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차종손 이치억(45) 씨는 "아버지 뜻에 따라 후손들에게 방문하지 말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예년에는 친지 15~20명이 사당에 모여 차례를 올렸다.

차례상에는 떡국과 포, 과일, 전 등 4가지 음식에 술과 간장을 올린다. 매년 간소한 차례상을 올렸지만 올해는 음식 양도 대폭 줄일 계획이다. 방문하는 손님들이 없기에 나눠먹을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다. 치억씨는 "원래 각자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종택에 오는 분들에게 전을 반찬으로 떡국 한그릇씩 나눠 먹었는데, 올해는 가족끼리 차례음식을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퇴계 이황 '불천위 제사(국가에 큰 공이 있거나 학덕이 높은 학자를 나라에서 정해서 자손대대로 제사를 지내는 게 허락된 제사)'는 온라인으로 지냈다. 퇴계 종택 에서 16대 종손 이근필 옹이 잔을 올리는 모습이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중계됐다. 영상 제사를 제안한 경상대 허권수 명예교수와 실재서당의 문영동 간사장은 경남 진주의 실재서당 특설자리에서 노트북 화면으로 보이는 퇴계선생의 신주와 제사상을 향해 절을 올렸다. 영상제사에는 퇴계선생을 존경하는 다른 문중과 유림, 학자,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임직원과 지도위원 등 40여곳에서 온라인 접속했다.

석담 종손 이병구(가운데)씨와 이수상(왼쪽)석담종회 부회장, 이우석 석담종회 사무국장 등이 지난 3일 종친들에게 설 명절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석담 종손 이병구(가운데)씨와 이수상(왼쪽)석담종회 부회장, 이우석 석담종회 사무국장 등이 지난 3일 종친들에게 설 명절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조선 중기 명신 금계 황준량 선생의 16대 종손 황재천(64) 씨는 다른 지역에서 직장에 다니는 자식들은 물론 3남 2녀 형제자매도 오지 못하게 했다. 황 종손은 "예년 설에는 많을 때는 50여명이 경북 영주시 풍기읍으로 모이기도 했지만 올해는 각자 집에서만 차례를 지내도록 연락했다"고 말했다.

차례상은 종전처럼 간소하게 차린다. 술과 포, 과일이 기본이고 여기에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을 추가한다. 사당 참배도 혼자 하고, 집에 방문할 손님이 없으니 음식도 적게 할 예정이다. 황 종손은 "과거에도 집안에 중환자가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코로나19 상황이니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모이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상차림이 호화로운 건 우리 제사 문화가 아니라고도 했다.

조선시대 공조참의를 지낸 경북 칠곡의 석담 이윤우 선생의 종가도 4명 미만이 모여 차례를 지낸다. 음식 가짓수와 양도 대폭 줄였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각자 집에 돌아가서 먹을 수 있게 '음복 도시락'을 준비했다. 음복 도시락은 지난해 추석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차례 때 사용한 전·강정·과일·유과·약과를 편의점 도시락처럼 담았다.

특히 설에 종갓집 사당으로 참배 오는 마을 종친들도 식혜와 수정과 등을 '테이크 아웃' 하도록 했다. 참배를 마친 종친들에게 물 한잔 대접하지 않을 수 없어 짜낸 고육지책이다. 16대 종손 이병구(68)씨는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명절이라도 가족이 모이지 않았다"며 "하늘에 계신 조상들께서도 이번만큼은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 이용호 기자
칠곡=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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