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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 "나치 강제 수용 유물 판단 권한 없다"... '주권면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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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 "나치 강제 수용 유물 판단 권한 없다"... '주권면제' 인정

입력
2021.02.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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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유대인 소장 유물 헐값에 몰수?
후손 "독일 정부, 2800억 보상하라" 요구
美 대법 "홀로코스트와 무관... 관할 못해"

1930년대 독일 나치가 유대인 미술상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벨펜샤츠' 유물. 현재 유물들은 독일 베를린 장식유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1930년대 독일 나치가 유대인 미술상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벨펜샤츠' 유물. 현재 유물들은 독일 베를린 장식유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90여년 전 독일 나치가 유대인 소장 유물을 강탈했다며 후손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나치 행위의 정당성을 떠나 미국 법원이 타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권면제’ 입장에 선 것이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송에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한 한국 법원과는 결을 달리 하는 판결이라 관심이 쏠린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일(현지시간) 유대인 후손들이 독일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연방대법원이 기각했다고 전했다. 원고 측은 1930년대 나치 집권기에 미술상이었던 조상들이 소유하고 있던 종교 유물, 이른바 ‘벨펜샤츠’를 헐값에 거래해 사실상 몰수당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당 유물이 독일 정부가 소유한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만큼 정부가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원고 측은 미술품 강탈이 본질적으로는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과 일맥상통하다는 논거도 제시했다. 변호인들은 “보물을 소유한 유대인들은 당시 가족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했다”면서 “나치 치하에서 이뤄진 거래가 타당한 것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 대법원은 원고 측 입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독일 법원이 내린 “해당 미술품 거래는 협박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결을 사실상 받아들인 것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상속인의 재산 청구 관할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대량학살과 같은 국제법 위반 행위는 고려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재산에 대한 법리만 검토했다”고 밝혔다. 주권면제 원칙을 분명히 한 셈이다. 주권면제는 국가에 귀속되는 행위와 국가의 재산은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면제를 받을 권리를 갖고, 또 타국은 면제를 부여할 의무를 진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반(反)인권 범죄는 주권면제 대상에서 포함되지 않지만, 이번 소송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주권면제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는 독일 법원이 미국 정부가 수 년 전에 저지른 인권 침해로 인해 수억달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면 상호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방대법원은 원고 측에게 다른 길을 열어 뒀다. 조상들이 독일 시민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여지를 남긴 것이다. 폴리티코는 “향후 분쟁에서 미 법원이 이를 다시 심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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