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다루는 기술,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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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다루는 기술,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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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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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단비 드라마투르그(연출가와 공연 작품의 해석 및 각색을 하는 사람)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뮤지컬과 연극 등 기획부터 대본, 통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무경험을 토대로 무대 안팎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2017년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에서 이단비(맨 오른쪽) 통역가가 창극 '트로이의 연인들'의 연출을 맡은 싱가포르 연출가 옹켕센의 설명을 국립창극단 단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제공


상반기 공연 예정인 ‘고스트’ ‘팬텀’ ‘위키드’ ‘캣츠’ 등의 공통점 중 하나는 공연을 올리기 위해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섀도 온 스테이지(Shadows on Stage)’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공연 통역사들이 공연이나 무대 관련 정보를 나누는 곳이다. ‘무대 위의 그림자’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통역사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해외 창작진이 참여하는 공연 및 레플리카(Replica·외국에서 올렸던 공연을 그대로 복제해 가져와서 올리는 공연) 공연에서 언어적 소통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무대 위의 그림자처럼 관객에게 드러나지 않는 공연 통역사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공연 통역은 크게 나누어 기술 통역 혹은 연출 통역을 하게 된다. 공연의 특성에 따라 안무, 음악 감독, 무대, 의상 등 더 많은 세분화된 통역 인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기술 통역은 해외 프로덕션이 국내에 초청된 경우 무대의 셋업 및 철수에 주로 참여한다. 이 경우 언어적 능력에 선행하여 무대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관객이 무대를 바라볼 때 무대의 오른쪽과 왼쪽이 무대 위에서는 반대로 왼쪽과 오른쪽이 된다. 관객을 마주보는 배우의 시선이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통용되는 원칙이다. 무대의 좌우와 함께 기본적으로 무대의 앞(downstage)과 뒤(upstage)가 있다. 이 용례는 사실 오래 전에 생겨난 것이다. 가장 유명한 르네상스 시기의 극장인 올림피코 극장(Teatro Olimpico)의 경우, 무대가 경사졌다. 대부분의 현대식 극장들이 관객석이 경사지고 무대가 평평한 것과는 반대로, 당시에는 관객석이 평평하고 무대는 소실점을 향해 경사지게 지었다. 그러다 보니 경사가 가장 낮은 지점(down)에 서있는 배우는 관객과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고, 무대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up) 관객과는 멀어진다. 이렇게 ‘업스테이지’와 ‘다운스테이지’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현대의 극장들에서 무대의 앞과 뒤에 경사가 없음에도 이 용례는 그대로 남아 있다.

기술 통역이 무대 용어 및 장치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면, 연출 통역은 작품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또한 통역하고 있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령 창극단에서의 작업과 오페라단에서의 작업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연출이 지금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을 그리며 말하는지 그것을 한발 앞서 예측해야 한다. 함께 상상의 그림을 배우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연습실에 대도구와 연습용 소품들이 구비된다 해도, 극장에 들어가서야 완성된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배우와 연출가를 매개하는 입장에서, 서로 간에 신뢰가 쌓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캐릭터의 감정을 설명하고 배우를 설득하는 순간에 섬세함이 요구된다. 그 섬세함이라는 것은 순간적인 어휘 선택에서 발휘된다.

예를 들어 Dreamlike(드림라이크)라는 단어는 ‘꿈같은’ 혹은 ‘몽환적인’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 어감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전자에는 희망적이거나 현실과 반대되는 뉘앙스가, 후자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홀로 빠져 있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각 상황에 더 잘 들어맞는 뉘앙스를 선택해서 연출가의 목소리가 돼야 한다. 그 목소리는 서로 다른 문화권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해외 작품의 경우 한국적 정서와는 다른 경우가 많다. 일례로 뮤지컬 ‘레베카’ 초연을 준비할 때 ‘다운튼 애비’라는 영화가 하나의 레퍼런스가 됐다. 우리에게는 낯선 대저택, 귀족과 하인들의 모습을 이해하기에 좋은 자료였다. 이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마찬가지로 공연 통역은 더 적절한 어휘나 예시를 고민하며 외국 창작진과 한국 창작진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연출 통역은 늘 연출가의 옆에서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간혹 필자의 경우, 화장실에 가는 연출을 뒤따라 간 적도 있다. 그 이후로 연출은 "화장실"이라고 외치며 가기도 했다.

통역은 언어적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을 할 줄 알아야 하는 분야이다. 때로는 험악한 말이 오가는 가운데에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결국 감정적 중립과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인 것이다. 공연 통역은 이처럼 무대 위의 그림자처럼 관객에게는 비가시적으로 존재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힘을 발휘한다. 공연 통역은 말을 다루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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