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늦깎이다. 28세때 영화 ‘여배우들(2009)' 단역으로 데뷔했다. 37세에야 주목 받았다. 한국 영화는 아니었다. 러시아 영화 ‘레토’를 통해서였다. 전설적인 한국계 록 가수 빅토르 최를 연기한 이 영화로 2018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레드 카펫을 밟았다. 출연 기회가 늘었다. 영화 ‘버티고’(2019)와 ‘담보’,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2020) 등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10일 개봉하는 ‘새해전야’(감독 홍지영)에선 주연을 맡았다. 3일 오후 화상으로 배우 유태오를 만났다.
‘새해전야’는 새해를 앞둔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재활 전문 트레이너 효영(유인나)과 그를 담당하게 된 형사 지호(김강우),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무작정 아르헨티나로 떠난 진아(이연희)와 한국의 살인적인 격무를 피해 아르헨티나로 터전을 옮긴 재헌(유연석), 여행사 일을 하다 국경을 넘어선 사랑을 하게 된 용찬(이동휘)과 중국 연인 야오린(천두링) 등의 사연이 엇갈리며 펼쳐진다.
유태오는 패럴림픽 스노보드 국가대표 래환을 연기했다.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넘어 원예사 오월(최수영)과 맑은 사랑을 이어가는 역할이다. 유태오는 “스노보드 선수라는 설정이 일단 좋았다”고 했다. “발 쓰는 운동을 잘 못해서 축구도 못 하고 스노보드도 못 타는데 그런 점이 오히려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패럴림픽 자체보다는 래환과 오월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유태오는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작가 시점’에 11세 연상 아내인 영화감독 니키 리와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마스크 쓰고 가끔 동네 빵집 가거나 산책 나갈 때 사람들이 예전보다 좀 더 알아보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태오는 재독동포 2세다. 아버지는 광부로,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했다. “(독일에서) 외롭고 공허하고 혼자 붕 떠 있는 것처럼 느끼던” 10대 유태오에게 한국 로맨스 영화는 위로를 줬다. 그는 “한국 영화와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중경삼림’ 등을 보며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여름방학 때 한국에 놀러 와 비디오를 빌려 봤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와 ‘약속’ ‘접속’ 등 로맨틱한 영화들이었어요. 한국은 여름에만 놀러 와 습하고 더운 날씨가 저에게 로맨틱하게 느껴졌고요. 멀리서 들리는 수박 파는 소리, 세탁소 아저씨 소리 등이 저의 감수성을 만들어준 듯합니다. 제가 멜로 드라마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인 듯해요.”
‘새해전야’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끌린 역할은 용찬이다. “(감독과 시나리오의 의도와 달리) 진지하게 해석하며 영화 ‘만추’ 같은 멜로 드라마를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했다. “‘새해전야’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으면 용찬 연기를 해보고 싶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모국에 살며 “유교 문화의 긍정적인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독일에서 살 때는 “(개인 위주)교육 탓에 공감 능력이 부족했는데 우리나라로 와서는 그걸 많이 배운 듯하다”고 말했다. 논리를 강조하는 외국과 달리 감성을 바탕으로 한 연기를 배우기도 했다. “인사말도 우리는 ‘밥 먹었어?’잖아요. 독일에선 ‘어제 술 많이 마셔서 힘들다’ 그러면 안 좋게 보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럴 수 있지, 열심히 하자’며 다독이잖아요. 한국에 와서 그런 따스함을 알게 된 거 같아요.”
이제 마흔. 유태오는 “솔직히 마음이 급하긴 하다”고 말했다. “보여드릴 게 아직 많은데 다 보여주지 못했다”고도 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여러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다짐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해 해외 드라마 출연이 확정됐는데, 아직 자세한 발표는 할 수 없어요. 국내를 근간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도전적인 작품, 도전적인 역할을 계속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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