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항의 집회에 국방부 정찰비행 멈춰?
'국방부장관'이라 쓴 깃발 찌르고 태워
트랙터로 사격장 진입로 전면 봉쇄
"오늘부로 국방부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은 사망했습니다."
2일 오전 11시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마을회관 앞. 붉은 조끼를 걸치고 머리띠를 두른 수성리 마을 주민 5, 6명이 '죽음, 사망'이란 글자와 함께 큼지막하게 '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이라고 쓴 깃발을 죽창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이어 볏짚에 불을 붙여 두 깃발을 태웠다. 김상규 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국방부가 주민 협의 없이 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저버렸다"며 "국민과의 약속은 내팽개치고 미군과 약속만 지킨 인사는 더 이상 국방부장관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한 때 중단했던 수성리 수성사격장에서 아파치 헬기 사격훈련을 재개하기로 하자, 장기면 주민들이 다시 반발하고 나섰다. 국방부는 주민들의 항의로 지난해 11월 미군 아파치 헬기 사격훈련을 중단했지만, 지난 1일 오후 공식 입장문을 내고 "더는 미룰 수 없다"며 강행 의지를 밝혔다.
장기면 주민들로 구성된 반대위는 "국방부가 약속을 저버렸다"며 즉각 반발했다. 이미 마을회관을 비롯해 사격장 정문 입구와 진입로 등 3곳에 1개월 동안의 집회신고를 마쳤다. 또 차량 두 대가 지날 수 있는 군 사격장 진입로와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농로까지 트랙터로 전면 봉쇄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주민들의 항의를 의식한 듯 이날 오전 수성사격장 상공에서 예정된 정찰비행을 돌연 멈췄다. 군은 지난달 29일에도 1차 정찰비행을 실시하려다 미뤘다.
수성사격장은 지난 1960년 1월 해병대의 포항 주둔에 맞춰 수성리에 1,246만㎡ 규모로 들어섰다. 1965년부터 본격 사격훈련이 이뤄졌고, 주로 포병과 전차 훈련장으로 쓰였다. 56년간 사격장으로 이용됐지만 50여 가구, 130여명이 사는 마을에서 불과 1㎞ 가량 떨어진 곳이어서 주민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사격장에서 마을 길을 따라 흐르는 작은 하천에는 지금도 물이 마르면 빗물 등에 휩쓸려 떠내려 온 포탄과 탄피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난해 2월부터 이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폭음과 진동에 시달렸다. 해병대와 해군, 육군의 사격훈련에 이어 미군 아파치 헬기가 가세한 것이다. '탱크 킬러'라고 불리는 아파치 헬기는 대전차 미사일 장착은 물론 분당 650발을 발사할 수 있는 30㎜ 기관포까지 막강한 화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그동안 경기 포천시 영북면 로드리게스 훈련장(영평사격장)에서 아파치 헬기 사격훈련을 했다. 하지만 극심한 소음과 진동에 주민들이 반발하자 다른 훈련장을 물색했고, 수성사격장을 택했다.
정석준 반대위 공동위원장은 "헬기 사격훈련 때는 전화도 받을 수 없는 엄청난 소음에 시달린다"며 "지난 56년간 사격장 때문에 산불과 소음, 진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미 8군의 핵심 전력인 아파치 헬기의 전투준비대체 유지를 위해 사격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사격 훈련을 유예한 후 국방부차관 등이 포항 지역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했지만 주민들과 협의 자체가 어려웠다"며 "향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국가안보에 필요한 주한미군의 아파치 헬기 사격여건을 보장하면서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방안을 만들어가겠다"고 전했다.
이에 조현측 반대위 공동위원장은 "포천 시민만 국민이고 포항 시민은 국민이 아니냐"며 "포항 시민을 우롱하는 국방부의 행태를 더는 참을 수 없으며 죽기를 각오하고 사격훈련을 막겠다"고 말해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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