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기와집길, 한달 후면 기와집 없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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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기와집길, 한달 후면 기와집 없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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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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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김시덕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편집자주

도시는 생명이다. 형성되고 성장하고 쇠락하고 다시 탄생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그 도시 안에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가 도시의 의미를 새롭게 던져준다.


<8> 철거 앞둔 춘천 기와집골

올 3월 철거 예정인 강원도 춘천시 구도심의 개량기와집 단지. 김시덕 제공

지난 회에는 서울 성북구와 영등포구의 개량기와집 단지를 소개했다. 이번 회 주제는 강원도 춘천의 개량기와집 단지다.

'전주 한옥마을'이 잘 보여주듯이, 개량기와집 단지는 20세기 중후기 한반도 곳곳에 조성되었다. 식민지 시기에 조성된 경기도 개성의 개량기와집 단지는, 개성이 6·25전쟁의 피해를 기적적으로 피한 덕분에 지금도 북한 지역에 잘 남아 있다. 구글이 제공하는 위성지도에는 '개성 한옥마을'이 뚜렷하게 보인다. 반면 식민지 시대에 번성했던 강원도 철원에 많이 지어졌던 개량기와집들은, 전쟁 당시 철원이 격전지였던 탓에 깡그리 사라졌다.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명호 선생은 철원 개량기와집 단지가 사라진 과정을 이렇게 회고한다.

“기와집 천지였는데 전쟁 중에 기둥을 빼다 땔감으로 썼지. 연료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으니까. 그도 없어지니 철도 전신주와 침목을 걷어다가 땠어. 철원은 그렇게 사라진 거야.”(중앙일보 2010년4월6일자 '전쟁 60년, 전후세대의 155마일 기행 ③철원 ‘철의 삼각지'')

6·25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사라진 철원 기와집의 모습을 오늘에 전하는 것은, 이 지역 출신의 월북 소설가 이태준이 식민지 시기에 경성으로 옮겨온 철원 고향집 '수연산방' 정도다. 오늘의 글과는 관련 없지만, 수연산방 주변은 만해 한용운이 거처한 심우장, 정릉 북정마을 등 살필 곳이 많은 지역이므로 휴일 반나절 정도 산책하실 만하다.

한편 의정부역 동쪽에는 '월남촌'이라 불리는 개량기와집 단지가 있는데, 베트남 전쟁에서 귀환한 군인들이 그곳에서 번 돈으로 기와집 단지를 세웠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참고로 인천 유동에도 똑같이 '월남촌'이라 불리는 주택단지가 있는데 이곳은 양옥집 단지다. 또 의정부 월남촌의 서남쪽에는 6·25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군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정착했다고 해서 '연백촌'이라 불리는 지역이 형성돼 있다. 이처럼 개량 한옥마을과 주변 지역 가운데에는 전쟁과 관련을 맺은 곳이 많다. 20세기 중후기 한국이 사실상 전쟁을 통해 그 모습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형형색색 지붕이 돋보이는 춘천 개량기와집 단지. 김시덕 제공

개성, 철원, 전주, 의정부 등과 마찬가지로 강원도 춘천에도 개량기와집 단지가 조성됐다. 춘천의 개량기와집 단지는 '기와집골'이라 불린다. 그리고 지역 이름을 따서 최초의 도로명주소도 '기와집골'로 붙었다. 그러나 현재의 도로명주소는 '기와집골'이 아닌 '기와집길'이다. 기와집'골'과 기와집'길'이 공존, 또는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골'과 '길'이 혼용되는 유명한 사례는 서울 강북 구도심의 피마'길' 또는 피마'골'이다. 조선시대 고위 관료들을 피해 하층 계급민들이 다녔다는 골목을 가리키는 피마길 또는 피마골은, 골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길'이고 건물들 사이에 가늘게 나 있는 골짜기 같은 모습을 강조하면 '골'이다.

춘천 개량기와집 단지 일컬어 기와집'골'과 기와집'길'이 혼용돼 사용되고 있다. 김시덕 제공

기와집골 또는 기와집길은 춘천 구도심의 봉의산의 서남부 사면에 형성된 좁은 골짜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우선 '기와집골'이라 불리는 것이 납득이 된다. 동시에, 사면에 넓게 펼쳐진 개량기와집들 사이로 나 있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곳에 '기와집길'이라는 도로명주소가 붙은 것도 납득이 된다. 다만 이 '기와집길'이라는 도로명주소는, 올해 3월 이후에는 명실상부하지 않게 된다. 고층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철거되기 때문이다(강원도민일보 2021년1월5일 '‘준상이네 집’ 춘천 기와집골, 3월 사라진다').

춘천기와집골은 봉의산 서남쪽 사면에 형성됐다. 김시덕 제공

춘천 봉의산 서남쪽 사면에 개량기와집 단지가 형성된 것은 6·25전쟁 무렵이었다. 1951년부터 춘천역 동쪽에 미군 기지인 캠프 페이지(Camp Page)가 주둔하면서, 부대 동쪽 소양동 일대에 기지촌이 형성됐다. 춘천역에 내리면 미군 부대의 담벼락이 정면을 가리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도 많을 터이다. 캠프 페이지가 춘천역과 봉의산 남쪽 시내를 가로막은 때문에, 경춘선은 춘천역보다 남춘천역 쪽이 사실상의 종착역으로서 더욱 번화했었다.

춘천기와집골과 이웃한 캠프 페이지 기지촌의 현재(왼쪽)와 과거. 김시덕·자료사진

캠프 페이지가 있던 시절에는 부대 동쪽의 보물 제77호 고려시대 7층석탑 주변이 기지촌으로 번성했고, 기와집골은 그 배후 주거지이자 춘천 구도심의 부촌(富村)으로서 기능했다. 7층석탑이 문화재이다보니 주변 지역의 재개발이 금지되어, 지금도 기지촌 시절의 양복점과 약국 건물 등이 일부 남아 있다. 지난해 현지 답사 때 만난 양복점 사장님은, 차라리 기지촌 시절의 블록을 전체적으로 남겼다면 관광지가 되었을 터인데, 탑 주변의 짧은 골목길만 남는 바람에 마을이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다.

기와집골과 기지촌 사이에 위치한 옛 아세아극장 건물. 현재는 어린이집으로 사용 중이다. 김시덕 제공

기지촌 골목과 기와집골 사이에는 '아세아극장'이라는 이름의 극장이 영업하고 있었는데, 이 건물은 간호보조양성소를 거쳐 현재는 어린이집으로 이용되고 있다. 7층석탑 옆의 기와집 골목과 함께 이 지역이 한때 미군 기지촌이었음을 오늘에 전하는 도시화석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잘 지은 건물이므로, 이번 재개발에 철거되지 않으면 좋겠다.

언덕으로 향하는 춘천기와집골의 골목길. 김시덕 제공

옛 아세아극장 건물과 경로당 건물을 지나서부터 언덕 위로 펼쳐지는 것이 기와집골 또는 기와집길이다. 이 지역의 동쪽 고지대에는 고층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어떤 분들은 이 고층아파트 단지도 기와집골 같은 개량기와집 단지를 재건축한 것이라고 기억하지만, 1982년 제작된 지도를 보면 이 지역에는 주택 단지가 형성돼 있지 않다. 또 어떤 분들은 이 고지대에 옛 “감람나무 박태선 장로”의 전도관 건물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20세기 중기 한국의 한때를 풍미한 전도관의 종교 시설은 대체로 구도심이 내려보이는 외곽의 고지대에 세워졌으므로, 이 증언은 신뢰할 만하다.

한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드라마 '첫사랑' '겨울연가' 촬영지. 김시덕제공

기와집골은 드라마 '겨울 연가'의 주인공인 준상이 어린 시절 살았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기와집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어로는 '겨울 소나타(冬のソナタ)'라 불리는 드라마 '겨울 연가' 속의 '준상이네 집'은 기와집골과 고층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한때 일본과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줄지어 찾아왔다는 이곳 '준상이네 집'과 그 주변에는, 현재 '공가(空家)'와 '철거예정'이라는 페인트 글씨가 살벌하게 써있을 뿐이다. 드라마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철거 예정 페인트 글씨가 나란히 놓여 있는 풍경은, 한때 드라마 겨울연가가 만들어냈던 우호적 분위기가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2021년 현재의 한일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기와집골 서쪽의 언덕에 서면 캠프 페이지 부지(왼쪽부터)와 옛 아세아극장, 기와집골이 내려다 보인다. 김시덕 제공

기와집골의 전체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포인트는 기와집골 서쪽의 언덕 지대이다. 이 서쪽의 언덕지대와 동쪽의 고층아파트 단지 사이의 골짜기에 개량 기와집 단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한때 춘천의 부자들이 살았다고 하는 기와집골과는 달리, 이 서쪽의 언덕 지대에는 한국 곳곳의 비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동네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주민들의 퇴거가 거의 끝난 것으로 보이는 이 언덕에 서서 동쪽을 바라보면 기와집골과 아세아극장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을 바라보면 캠프 페이지의 부지 전체가 조망된다.

이 언덕 위에 서서 기와집골을 내려보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사실상 마지막 남은 춘천의 유산”(강원도민일보 2020.03.26 '겨울연가 기와집골 재개발에 밀려 역사 속으로')인 이 개량 기와집 단지까지 굳이 헐어서 고층아파트 단지를 만들었어야 하겠는가, 하고 말이다. 서울 북촌이나 익선동, 전주 한옥마을 이상으로 개량 기와집들이 잘 조성돼 있는 이곳은, 20세기 전기의 도시 공간이 6·25전쟁으로 거의 파괴된 춘천에서는 희귀한 구도심이다. 그 가치를 파악한 춘천시에서 이 지역을 도시재생사업 대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토지주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고 한다.

1976년 서울 성북구 안암동1가 한옥밀집지구. 성북문화원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한국 시민들은 정말은 기와집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세기 후반 서울 안암동의 대규모 개량 기와집 단지를 철거한 것은, 그 가치가 미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촌·서촌·전주한옥마을에 맞먹는 서울 길음역세권 개량기와집 마을이나 이 춘천 기와집골이 21세기에 철거되고 있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곳 토지주들이 고층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한다는 계획이 이미 확정돼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이므로, 춘천 기와집골은 올해 3월이면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기와집길'이라는 이곳의 도로명주소도 바뀌어야할 것이다. 새 도로명주소는 '아파트길'이라고 붙여야 하나?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철원의 개량 기와집 단지처럼 전쟁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보다 더 철저하게 한국의 모습을 바꾸는 재개발로 인해 춘천의 개량 기와집 단지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이곳을 들러보실 것을 권한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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