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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만 3번... 험난했던 미얀마의 70년 민주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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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만 3번... 험난했던 미얀마의 70년 민주화 여정

입력
2021.02.01 22:00
수정
2021.02.0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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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태국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의 사진을 들고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는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1일 태국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의 사진을 들고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는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지난 70여년간 미얀마에선 군사정권이 쿠데타로 엎어지고, 그렇게 들어선 또 다른 군사정권이 또 다시 쿠데타로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 정치적 갈등, 불교와 소수종교 간 불화, 물가폭등과 부정부패 같은 사회 불안을 틈타 군부가 힘을 키웠다. 아시아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우탄트)까지 배출한 나라임에도 1962년 네윈 육군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2015년 총선에서 민주화 세력이 승리하기까지 무려 53년간 군사독재가 이어졌다.

군부 통치 하에서 버마족 우선주의와 소수민족 탄압, 독자적 사회주의 경제를 지향했던 미얀마는 세계 최빈국이자 최악의 인권침해국으로 전락했다. 민주화 열망은 군부의 무력 진압에 번번이 좌절됐다. 1988년 8월 8일 시작된 이른바 ‘88항쟁’ 당시엔 시민 3,000여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1만여명이 실종됐다.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영국에서 잠시 귀국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가 민주화운동의 길에 들어선 것도 당시 참상을 목격하면서부터다.

한 달 간 이어진 혼란을 끝낸 것도 쿠데타였다. 9월 소우 마웅 장군이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를 조직해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네윈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소우 마웅은 민간에 권력 이양을 약속했지만, 1990년 5월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의석 80%를 차지하며 압승하자 총선결과를 무효화하고 정권을 강탈했다. 1992년에는 군부 2인자 탄 슈웨가 소 마웅의 뒤를 이어 SLORC 의장직에 올라 국가 최고통치자가 됐다. 탄 슈웨는 이후 20년 가까이 권력을 휘두르며 민주화 세력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누적된 불만은 2007년 다시 터져 나왔다. 정부의 기름값 인상을 계기로 전국적인 반정부 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승려들이 선두에서 군부에 맞섰다. 국민적 존경을 받는 승려들이 무참히 끌려가는 모습에 시민들도 가세했다. 이 시위로 최소 31명이 숨지고 74명이 실종됐으며 수천명이 연행됐다.

19년 만에 타오른 저항의 불길은 총부리 앞에 사그라들었지만 민주화 열망까지 꺾지는 못했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 경제 제재, 국내의 산발적인 저항이 계속됐다. 미얀마 군부는 버티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2011년 독재자 탄 슈웨가 물러났고, 2015년 총선이 실시돼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그러나 문민정부 시대에도 군부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군사독재 시절 만들어진 헌법에 따라 군부는 의회 의석 25%를 할당받고 내무, 국방, 국경경비 등 치안ㆍ안보 관련 부처를 관할한다. 외국 국적을 가진 배우자나 자식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조항도 만들어 영국인 남편을 둔 수치 여사의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했다. 민주화 세력과 군부 간 힘의 균형이 깨지면 언제든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상존했던 것이다. 그리고 1일(현지시간) 미얀마 군부가 전격적으로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인사들을 구금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놓인 전략적 완충지대이기도 하다. 두 강대국이 지배력 확장을 위해 미얀마 군부 세력을 용인함으로써 미얀마의 정치적 혼란을 방조하고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마족(68%), 샨족(9%), 카렌족(7%), 라카인족(4%) 등 복잡한 민족 구성도 미얀마의 사회 통합을 가로막았다. 수치 여사는 무슬림인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을 사실상 묵인해 국제사회의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쿠데타가 소수민족 반군이 둥지를 튼 국경지역의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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