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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감독 "스가 총리 말에 관심없는 일본인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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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감독 "스가 총리 말에 관심없는 일본인들, 무섭다"

입력
2021.02.02 07:50
수정
2021.02.02 09:5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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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2016년 10월 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영화 '은판 위의 여인'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2016년 10월 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영화 '은판 위의 여인'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구로사와 기요시(66) 감독은 지금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83년 ‘간다천음란전쟁’으로 데뷔해 주로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지난해 ‘스파이의 아내’까지 43편을 연출했다. ‘큐어’(1997)와 ‘회로’(2001), ‘도쿄 소나타’(2009) 등으로 국내에도 열성 팬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위기에 처한 영화산업, 1965년 수교 후 최악이라는 한일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달 28일 오후 화상으로 구로사와 감독을 만났다. 그는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한국보다 좋지 않아 요즘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구로사와 감독의 연출 이력 중 전환점이 될 만한 영화다. 현대 일본사회만 그렸던 그의 첫 시대극이다. 1940년 고베 무역상 유사쿠가 만주 출장을 갔다가 731부대의 만행을 본 후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일제의 죄상을 세상에 알리려는 유사쿠와, 가정이 무너질까 봐 유사쿠를 말리는 아내 사이토의 사연이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이런 주제, 이런 내용을 다루는 영화가 일본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TV드라마로 만들어져 일 공영방송 NHK에서 먼저 공개됐다. 이후 재편집을 거쳐 극장에서 개봉했다. 세계 유명 영화감독들이 넷플릭스 등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와 방송사를 위해 드라마와 영화를 만드는 최근 추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스파이의 아내’를 TV용으로 만든 후 영화로 재편집할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며 “(초고화질인) 8K 촬영이라 영상 질이 높아 재편집 후 극장 상영이 충분하다는 생각에 하게 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가 여전히 가장 중요하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행위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최신작 '스파이의 아내'. 올해 한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M&M인터내셔널 제공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최신작 '스파이의 아내'. 올해 한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M&M인터내셔널 제공


지난해 한국 극장 매출이 전년에 비해 70%가량 줄어들어 ‘승리호’ 같은 대작 영화가 넷플릭스로 직행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고 하자 구로사와 감독은 “감독 입장에선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배우와 스태프 등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며 “극장 상영을 위해 완성도를 높인 영화가 바로 OTT로 가는 건 달갑지 않다”고 덧붙였다. “내가 아는 선에선 일본 영화가 OTT로 직행한 경우는 없다. 1년쯤 후 ‘우리가 한때 힘들었다’ ‘힘들었던 상황을 지나쳐 왔다’고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도쿄 소나타’ 같은 가족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지만 공포영화의 대가다. 공포영화의 새 문법들을 만들어내 감독들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본 최고 영화를 꼽을 때마다 구로사와 감독의 ‘큐어’를 종종 언급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무서운 장면을 대충 만들면 코미디가 되니 공포영화에는 굉장한 섬세함이 필요하다”며 “모든 스태프, 배우와 함께 주의를 기울어 영화를 만들다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억압되고 감춰진 일본사회 이면을 표현하는데 있어 공포만큼 좋은 장치가 없다”고도 말했다. 관객은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를 보면 잠을 잘 못 자는데, 정작 감독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공포영화 촬영장에선 스태프와 배우가 ‘어떻게 하면 더 무서울까’ 아이디어를 내면서 즐겁게 일을 한다”며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즐거운 기억만 있을 뿐이고, 꿈도 즐거운 내용으로 꾼다”면서 웃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지난달 28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제공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지난달 28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제공


공포영화에 천착한 그도 최근 “공포영화가 지겨워졌다”고 했다. “공포영화로 현대 일본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고독을 다뤄 왔는데 고독이라는 주제는 한계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스파이의 아내’는 역사가 배경이 되니 세계가 좀 더 확장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완곡 화법으로 일본 사회를 표현해 왔던 그가 좀 더 직설로 일본사회를 비판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는 일본 정부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뭘 말하는지 별 관심이 없다. 스가 총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인은 많지 않을 거다. 사실 그런 무관심이 굉장히 무섭다.”

구로사와 감독은 최악이라 평가 받는 한일관계에 대해 “이럴수록 교류가 매우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인끼리도 각자 입장과 사정을 알기 위해 만나야 하고 그러면 언젠가 사이가 좋아진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봉준호 감독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에 오른 점도 놀라워하며 뒤늦은 축하를 전했다. “상은 받은 것 자체가 대단하다. 가장 놀라운 건 ‘기생충’이 매우 봉준호다운 영화, 봉준호 스타일이 집대성된 영화라는 점이다. 특정 상을 받기 위해 전략을 세워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칸영화제를 포함해 여러 상을 받았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ㆍ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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