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소문'을 공포로 흔들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모처.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건넨 배우 이홍내(31)의 얼굴엔 마스크 위로 눈웃음이 진하게 번졌다. 분명 따뜻한 데 묘하게 섬뜩했다. 스크린 밖에서 환하게 웃는 '어벤져스' 시리즈 속 타노스를 연기한 조시 브롤린을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인터넷 교체 기사님이 절 보고 무섭다고"
케이블채널 OCN 개국 26년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를 처음으로 돌파하며 화제를 모은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이홍내는 웃음과 단단히 벽을 쌓은, 악귀에 씐 살인마(지청신)로 나왔다. 그는 광기 어린 연기로 새해 안방극장을 공포로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안 그래도 무서워하는 분이 너무 많아요. 인터넷 교체로 집에 기사님이 오셨는데, '지청신 아니세요?'라고 물어 '맞다'고 하니 '집에 들어올 때부터 무서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여기가 지청신의 집인가요?'라면서요. 그래서 '기사님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라고 했죠, 하하하."
'경이로운 소문'에서 이홍내가 맡은 지청신은 타노스 같은 존재였다. 드라마의 비극은 지청신을 중심으로 흘렀고, 그로 인해 소문(조병규) 등 악귀 잡는 사냥꾼들의 '인간 승리'는 도드라졌다.
지청신은 보육원 원장에 학대를 받고 자라 몸에 악한 영혼을 품게 된 인물. 이 중요한 배역을 무명 배우나 다름없는 이홍내는 어떻게 낚아챘을까.
이홍내는 지난해 6월 드라마 제작진으로부터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먼저 캐스팅된 조병규가 '경이로운 소문' 유선동 감독에 이홍내를 추천했다고 한다. 두 배우는 3년 전 웹드라마 '독고 리와인드'에 함께 출연했다.
"조병규씨와 유 감독님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감독님이 '지청신으로 마땅한 사람이 없네. 괜찮은 사람 누가 있을까'라고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병규씨가 휴대폰으로 제 사진을 보여줬고요. 그걸 보신 감독님이 소속사를 통해 오디션 기회를 주셨죠. '독고 리와인드' 때 조병규씨와 한 번도 같이 마주하고 촬영을 한 적이 없는데, 절 인상 깊게 봐준 것 같더라고요. 오디션에서 '지킬 앤드 하이드' 느낌으로 1인 2역하며 연기를 했고, 결국 이 역을 맡게 됐죠. 캐스팅된 뒤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악역 하비에르 바르뎀처럼 기괴한 느낌을 보여주고자 노력했고요."
"어깨만 나온 작품도 여럿" 택배 상하차 일 하며 버틴 뚝심
'경이로운 소문'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기까지 이홍내는 그간 작품에서 '얼굴 없는' 배우였다. 포털사이트에 공개된 그의 프로필을 보면 '침입자'(2020)에 실종된 경찰관 역으로 출연한 것으로 나오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그는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촬영했으나 편집된 탓이다. 2014년 영화 '지옥화'로 데뷔해 20여 작품에 출연했지만, 얼굴 대신 어깨와 뒷모습만 나온 작품도 수두룩하다.
6년여의 무명 생활, 이홍내는 이 악물고 연기 외길을 걸었다. 고향인 경남 양산에서 스무 살에 홀로 서울로 올라와 데뷔 초 작품이 들어오지 않으면 택배 상하차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제가 서울에 지은 아파트도 여럿이에요. 2010년도부터 인력소에 다녔죠. 저 미장 기능사 자격증 있거든요. 군자에 있는 인력소였는데 '경이로운 소문'이 인기를 얻다 보니 반장님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왔죠. 그렇게 돈을 벌며 연기를 했어요. 어깨만 나오고 뒷모습만 나왔지만, 제겐 모두 행복한 작업이었어요. 연기 외의 다른 길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딱히 위기를 느끼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어요. 전 돌아갈 곳이 없었거든요."
BTS '컴백홈' 뮤비 출연도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이홍내는 군 제대 후 배우가 되기로 꿈을 굳혔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2017년 방탄소년단이 서태지와아이들 동명 노래를 리메이크한 '컴백홈'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이홍신은 "제가 그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며 "방탄소년단이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데 그 과정에 제가 함께 했다는 게 경이로웠다"며 웃었다. 그 이후 이홍신은 적지 않은 시간을 민머리로 지냈다. '더 킹: 영원의 군주'(2020)를 비롯해 '경이로운 소문' 등 맡았던 배역이 모두 삭발을 해야 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홍내는 다시 머리카락을 기를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개봉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영화 '뜨거운 피', '카운트', '메이드 인 루프탑' 등으로 하루빨리 관객을 만나는 것도 바라고 있다.
"좋아하는 진선규 선배님이 한 말이 있어요.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라는 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싶다라고요. 느리더라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그 별에 다다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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