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 "세상 무서워졌다는 남성들, 뭘 바꿔야 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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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세상 무서워졌다는 남성들, 뭘 바꿔야 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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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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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의 성추행 아이러니
권 의원 "신념과 언행 격차 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는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고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와 내 주변부터 섬세하게 바꿔나가지 않으면 달라진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대근 기자

성평등에 앞장서겠다는 진보정당 대표가 소속 의원을 성추행했다.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사건이 충격을 줬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아이러니 때문이었다. 이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인간 본성’ 문제로 손쉽게 도피했고, 다른 이들은 진보의 이중성을 꼬집는 데 몰두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차라리 입을 다무는 사람도 많았지만 소신 발언을 하는 소수도 있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6일 “정의당 사건에 대해 민주당에서 발표한 입장문은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했다”며 소속 정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소속 광역지자체장들의 잇단 성폭력 사건 연루와 미흡한 사후 대처에 책임이 큰 민주당이 정의당 사건에 대해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남 일처럼 지적한 대변인 논평을 낸 것을 두고서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로 이후 여성학을 연구하다가 현실 정치에 뛰어든 권 의원에게 물었다. 정의당 성추행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진보 진영에서 잇달아 권력형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를 “추상적 신념과, 말과 행동의 격차가 아직도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자들이 무서워졌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와 내 주변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섬세하게 살펴보고 진지하게 성찰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의당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어떻게 봤나.

“가해자가 성평등을 강조했던 사람이기에 굉장히 아이러니컬하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두들 절망감이 컸을 것 같다.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이 말했듯, 전형적인 피해자ㆍ가해자상은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평소 본인이 느끼는 가치와 신념이 무엇이든 간에 구체적인 일상과 관계에서 하는 행동 면에서는 우리가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사회인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부족한가.

“서열 중심, 남성 중심 문화가 워낙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윗사람은) 나의 일방적인 느낌이 대체 왜 일방적인지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추상적인 신념과, 말과 행동이 굉장히 많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20~40대 여성, 그리고 젊은 남성들은 성희롱, 성추행 등 성폭력을 겪으면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걸 사회가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조직이나 공동체에 (나의 폭로가) 어떤 타격을 줄 것인가를 우선 고민했다. 하지만 서지현 검사 사건부터 여러 ‘미투’ 운동에서 드러났듯 이제 우선적인 가치가 많이 바뀌었다. 조직보다는 성평등한 질서, 폭력에서 자유로운 질서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제 사회의 전면에 올라와 있다. 나부터 섬세하게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질서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진보진영 리더들이 겉으론 성평등을 외치면서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가식과 이중성이라며 꼬집는 목소리도 많다.

“가식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가 자기의 생활 속에서, 주류적인 가치와 문화에 젖어있던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다. 남성들은 특히 젠더 문제에 있어서 자신들이 여성들의 판단이나 느낌을 얼마나 의식하지 않고 사는지, 그걸 정말 모른다. (여성들의 문제제기 때문에) ‘세상이 무서워졌다’고 말만 하지, 실제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거나 자기 주변의 문화를 바꾸신 분은 제 주위에도 거의 없더라. 그게 현실이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의당의 성추행 사건 수습에서 배울 만한 점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이 섬세하게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오대근 기자


-권력형 성폭력을 막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서열 중심의 조직 문화 속에서 주로 하급 직원일 때가 많은 여성의 의사나 느낌이 얼마나 전달되기 어려운 구조인 지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젠더 관계 속에서 내 행동과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자문과 토론을 해야 한다. 힘을 가진 여성들도 서열 속에서 어떤 식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판단과 성찰, 평가가 동반되어야 한다.”

-정의당은 그런 면에서 좀 더 감수성이 예민했을 것 같은데.

“진보 정당이라고 할지라도 나와 내 주변을 바꾸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을지 모르겠다. 젠더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을 거부하지는 못하지만, ‘불편하다, 조심해야지’ 정도의 마음이 최선이 아니었을까.”

-정의당은 사건 발생 후 수습을 잘 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편으로 이런 훌륭한 수습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수습 과정에 배울 점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왜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지 직시하고 구체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장혜영 의원이 큰 용기를 냈는데, 어떻게 지지할 수 있을까.

“장 의원은 본인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분이다. 본인이 잘 감당할 거고, 잘 판단하실 것이다. 그분을 믿어주는 것이 가장 큰 지지이다.”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미투 사건 수습 과정에서 나타났듯,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세력이나 관행이 지배적이다. 미투에 나선 여성들이 회복과 치유보다는 피폐와 우울로 가기 십상이다. 연대와 지지세력이 있다는 믿음이 굉장히 중요하다. 여성들이 여성들의 뒷배가 되고, 뱃심이 되어줘야 한다. 여성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내세워도 이 조직이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변화하리라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사회와 조직을 만들어 가야 한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그는 한동안 침묵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 박 전 시장은 그의 변호인이었다. 잠시 자리를 벗어나 물을 마시고 온 그는 한숨을 쉰 뒤에서야 어렵게 입을 뗐다.)

“인권위의 사건 규정과 발표를 존중한다. 피해자 변호사도 이야기했듯,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때다.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더는 없어야 한다. 이 문제는 이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시켜 나가기 위한 교훈으로 삼자. 새로운 의혹을 더 이상 들고 나오는 건 불필요해 보인다.”

-'여성 장관 비율 30%'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다. 하지만 최근 개각으로 여성 장관 비율이 10%대로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공약을 지킬 수 있을까.

“문 대통령께서 공약을 지키시려고 노력할 거라고 본다. 그러셔야 한다. 제가 민주당에 영입됐을 때 고위직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고 싶다고 했었던 분이 문 대통령이다. 왜 여성 장관 비율이 최소한 30%는 되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성택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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