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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 단죄 '새로운 서사' 여성정치인들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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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 단죄 '새로운 서사' 여성정치인들이 썼다

입력
2021.01.28 04:30
수정
2021.01.28 08:0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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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정의당 의원,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혜영 정의당 의원,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은 또 하나의 ‘정치인 성폭력 사례'로 끝나고 말 수도 있었다. 피해자의 대응부터 가해자·피해자가 소속된 조직의 대처, 정치권의 반응까지, 이번엔 확연히 달랐다.

어려운 걸음을 내딛게 한 동력은 ‘새로 등장한 여성 정치인들’이었다. ‘국회의원 평균 나이 55세·남성 비율 87%’로 요약되는 기성 정치권력에 맞선 '여성 초선'과 '여성 정치 신인'들이 성폭력 처리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너도 다쳐” 딛고, 철저히 피해자 편에 섰다

피해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사건 대처를 맡은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겸 젠더인권본부장. 두 사람은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잘못된 공식’을 깨부쉈다. '가해자가 우리 편이니까, 힘이 세니까, 조직이 외면할 테니까, 피해자만 다치니까' 같은 속삭임을 듣지 않았다.

30대 초선인 장 의원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관행에 돌을 던졌다. 당 대표에게 당한 성폭력을 당에 고발하고, 주변의 만류에도 스스로 피해자임을 공개했다. 그의 용기로 '누구든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입증됐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힘을 얻었다.

22년간 성폭력 피해를 지원한 인권활동가인 배 부대표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철저히 지켰다. 2차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일주일간 당 지도부도 모르게 비공개 조사를 했고, 구체적 성추행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같은 언론의 비본질적 질문에 철벽을 쳤다. 그의 목표는 오직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성폭력 타파'였다.

'연대의 힘'을 보여준 여성 정치인들. 그래픽=김대훈 기자

'연대의 힘'을 보여준 여성 정치인들. 그래픽=김대훈 기자


침묵하지 않았다...연대하고 먼저 반성했다

김 전 대표 사건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충격과 경악"(최인호 수석대변인)이란 논평을 냈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이 가해자로 등장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은 잊은 듯 굴었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비례대표 초선이 당 지도부를 꾸짖은 것이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 당사자이자, 여성학자이기에 그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전달됐다.

대학생이자 최연소 민주당 최고위원인 박성민 최고위원도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던 2차 가해와 민주당의 부족한 대응으로 상처받은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민주당의 잇단 성폭력 사건을 사과했다. 그의 용기는 "박원순 사건 피해자에 깊이 사과한다"는 이낙연 대표의 첫 육성 사과로 이어졌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장혜영 의원의 동료로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민주당 논평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절대 하지 않겠다”면서도 “민주당의 충고는 분명히 받을 것”이라 했다. '우리의 잘못을 먼저 뉘우치겠다'는 차가운 의지의 표현이었다.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회는 그래서 한참 더 바뀌어야 한다

여성 정치인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50% 여성 할당, 지역구 의원 공천 여성 가점 부여, 당 지도부 여성 의무 인선 등 '다양성과 연대의 정치'로 바꾸려는 노력들이 느리지만 단단하게 쌓인 결과다. 21대 국회 여성 의원이 57명(지역구 29명ㆍ비례대표 28명)으로 ‘역대 최다’라는 사실은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싹튼 토양이 됐다.

이제야 이런 목소리가 분출하는 것은 정치권이 인권, 평등, 다양성을 수호할 수 있도록 더 파괴적으로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정치를 바꾸는 것은 새 정치이며, 새 정치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새 정치인들이다. 용기를 낸 여성 정치인들이 법조인, 교수, 의사, 기업인 등 이른바 영입된 ‘주류 명망가 출신'이 아니란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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