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1835번째 아기가 왔다, 베이비박스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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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1835번째 아기가 왔다, 베이비박스의 하루

입력
2021.01.29 09:00
수정
2021.01.2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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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엄마] <2>베이비박스의 엄마들

<베이비박스에서 보낸 3일> ①아기방의 엄마

“내 새끼 돌보듯 엄마된 마음으로”
아기 곁 24시간 지키는 보육모들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난곡로의 베이비박스에는 아이들이 머물다 가는 아기방이 있다. 침대마다 이름과 생후 일수가 붙어있다. 한 아기가 자원봉사자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뒷모습마저 긴장감이 흘렀다. 늘 얼굴에 배었던 눈웃음도 사라졌다. 거실에 앉은 그의 시선은 한 군데에 꽂혀 있다. 방문 옆에 달린 초인종 스피커. 벌써 30분째다.

이 집의 벨은 각별한 의미다. 한 생명이 들어왔다는 신호라서다. 서울 관악구 난곡로의 어느 고개 꼭대기, 주사랑공동체교회가 13년째 운영하는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베이비박스’라고 부른다. 연주곡 ‘엘리제를 위하여’가 퍼지면 베이비박스, ‘띵동’하는 벨 소리가 나면 베이비룸에 아기가 놓였다는 뜻이다. 박스와 룸의 문에 감지 센서가 있어 바로 울리는 것이다.

◇"아기가 무사히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띵~동.’

베이비룸이다. 미리 전화로 상담 예약을 해둔 아기 엄마가 온 거였다. 보육사 이나래(26)씨가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앞방에서도 후다닥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상담사다. 20여 분 뒤, 이씨가 돌아왔다. 두툼한 포대기에 싸인 아기와 함께다. 그는 아기를 안고 무릎부터 꿇었다. 그렇게 한동안 기도를 했다. “아기가 무사히 이곳으로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빠지지 않는 말이다. 자기를 향한 축복이란 걸 이 어린 것도 아는 걸까. 낯선 손길에도 잠자코 있는 아기가 기특하다.

이씨가 조심스럽게 아기를 누이고 포대기를 푼다. 그야말로 핏덩이 같은 작은 생명체. 미리 빨아둔 배냇저고리로 갈아입히는 동안 팔다리를 꼬물거릴 뿐 용케도 울지 않는다. 모든 순간은 사진으로 기록된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누르는 손가락마저 조심스럽다.

“이때는 우리도 나가면 안 돼요.” 자원봉사자 중 큰 언니 격인 유미혜(56ㆍ가명)씨가 속삭였다. 혹시라도 포대기나 아기 옷으로 아기 엄마가 누군지 노출될 수 있는 위험마저 없애려는 노력이다. 생모의 신원 보호는 이곳의 오랜 철칙이다. 체중과 체온을 잰 뒤 마침내 이씨가 아기를 안고 아기방에 들어왔다. 소윤(가명)이는 이곳의 1,835번째 아기다.

이미 방엔 세 친구가 있다. 생후 13일 된 민준(가명)이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고, 30일을 넘겨 가장 맏이인 우진(가명)이는 모빌을 보며 혼자 누워 놀고 있다. 생후 29일째로 둘째 격인 승현(가명)이는 자원봉사자 임은영(50)씨 품에 안겨있다. 막내 소윤이는 발목에 아직 병원 이름표를 달고 있는 갓난아이다.

주사랑공동체가 있는 골목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누군가 박스의 문을 열면 아기방에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린다. 박스 안쪽에도 문이 있어 아기방에서 바로 열어볼 수 있다. 음악이 울리면 보육사는 얼른 아기를 안으로 안전하게 옮긴다. 이한호 기자

이씨가 젖병부터 분유통, 옷과 쇼핑백까지 소윤이의 소지품을 따로 촬영하고 보관해두는 동안 유씨가 소윤이를 안았다. 소윤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능숙하게 기저귀를 확인하고 갈아준다.

“이렇게 갓난아기가 오면 내 전담이야. 그래도 엄마 노릇한 지 33년이잖아.” 소윤이는 유씨의 품에서 어느새 젖병을 물었다. “아들들만 있다가 딸이 왔네.” 소윤이를 내려다보는 유씨의 눈길이 다정하다. “그래도 오늘은 아이들이 넷뿐이라 여유로운 편이야. 이달 초에는 9명이 있던 적도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잠시 상상해보니 아찔해진다. 그야말로 궁둥이 붙일 시간도 없을 거다. 아기마다 짜인 수유 시간표대로 2시간 혹은 3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다 보면 한나절이 금방 간다.

아기방은 보육사 세 명과 자원봉사자들이 꾸려간다. 아기방을 총괄하는 보육사는 하루 한 명씩 24시간 근무를 한 뒤 이틀간 쉰다. 자원봉사자들은 하루 4~8시간 간격으로 2명씩 짝지어 4교대로 보육사를 돕는다. 대개 1, 2주에 한 번씩 자원봉사를 하러 온다. 아기들이 많을 때는 10명을 넘기기도 한다. 그러니 자원봉사자들의 몫이 크다.

주사랑공동체에서 운영한다고 개신교 신자만 오는 건 아니다. 베이비박스를 만든 이종락 목사가 아기방을 다녀가며 자원봉사자에게 “집사님, 오늘도 오셨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하기에 처음엔 신자인 줄 알았다. 이 목사가 가고 나니 ‘집사님’은 “아이고, 나는 성경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저 엄마가 되어 주려는 마음 하나 붙들고 오는 거다.

◇‘33년 엄마 경력’이 소중히 쓰이는 곳

아기방 자원봉사를 하러 온 날, 한 후원자가 아기방으로 신생아용 모자와 양말을 보내왔다. 김지은 기자

나는 낮 시간조로 이틀째 나왔다. “민준이는 정말 순해서 우유 먹으면서도 잠이 들어요.” “승현이는 잠투정이 좀 있어서 오래 안고 얼러줘야 해요.” “우진이는 얼마나 젖병을 힘차게 빠는지 몰라요.” 아기들을 처음 보는 자원봉사자에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첫날 눈앞에 놓인 아기를 처음 안아 올릴 때만 해도 얼마나 긴장했나. 혹시라도 아기가 불편하진 않을까 무척 떨었다. ‘젖병을 위아래로 흔들면 분유가 뭉칠 수 있군. 아기를 안을 땐 목을 잘 받치는 게 중요해. 수유 시간이 아닌데 울 땐 기저귀부터 확인해 봐야 하는구나.’ 동영상 교육을 수강할 때 암기하듯 되뇌며 차올랐던 자신감은 생전 처음 보는 작은 생명 앞에서 무너졌다. ‘내가 과연 이 여린 아기를 만져도 되는 걸까. 뼈가 부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한 손으로 목을 받치고 조심스레 아기를 안아 어르자 신기하게도 아기가 울음을 그쳤다.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기분, 한 생명을 안온하게 만들어줬다는 행복감이 스며들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기는 불편하면 울음으로 말해요. 울지 않는다는 건 아기도 편안하다는 거야. 지금 아주 안정적으로 안고 있는 거예요.” 선배 자원봉사자의 조언에 마음이 놓였다.

신생아들이 사는 아기방은 베이비박스에서도 성역 같은 곳이다. 보육사와 자원봉사자 외에는 출입이 제한돼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아기방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은 뒤 미리 빨아둔 면 티셔츠로 갈아입고 앞치마를 두른다. 마스크도 아기방 앞에 마련된 새 것으로 바꿔 써야 한다.

아기방에선 늘 아기가 화제다.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에구, 왜 울어. 쉬 했나.” “우리 ○○이 밥 먹을 때 되니까 깨서 칭얼거려요?” “□□이가 똥을 이렇게나 시원하게 쌌구나!”란 말이 종일 오간다. 아기가 젖병을 잘 빨지 않을 때 안타까워하고, 트림 소리에 기뻐한다. 배냇짓을 보는 건 언제나 힐링이다.

“다 내 아들이고 딸이지. 그렇게 예쁘지 않으면 아이들 오줌이며 똥을 내 손에 묻혀가며 돌볼 수 있겠어? 여기 있는 시간, 아기들 안고 있는 순간엔 진짜 ‘내 새끼’라고 생각하지. 대학원까지 나오고 10년 직장 생활했으면 뭐해. 회사 그만두고 아이 둘 다 키우고 났더니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게 아이 보는 일인 거야.”

그래서 유씨는 2019년말부터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 엄마로 살아온 33년 경험이 가장 소중히 쓰일 수 있는 이곳에 자원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석 달 된 임은영씨 역시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선 훌륭한 엄마다. TV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베이비박스를 본 뒤 찾아와 아기방 봉사를 신청했다. 반차를 쓰는 날을 할애해 아기방에 온다.

“이곳에서 내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아기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아기들을 안고 있을 때 기도를 해요. 이 아이가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달라고, 보육원에 가더라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게 해달라고요.”

◇아기 짐 싸 보낼 때 터지는 눈물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기들은 아직도 60% 이상 보육원 같은 아동복지시설로 간다. 출생신고가 안 되면 입양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픽 강준구

아기들은 이곳에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6개월까지 머문다. 생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보육원 같은 사회복지시설로 가야 하는 경우엔 최대 7일 동안 지낸다. 매주 화요일이 시설로 아기들을 보내는 날이다. 입양기관으로 갈 예정이거나, 생모가 당장 키울 수 없어 임시로 맡긴 아기는 그 이상을 이곳에서 보낸다.

그러니 백일 잔칫상을 이곳에서 받는 아이도 있다. “나중에 커서 백일 사진도 없으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그러니까 이곳에 있을 때 백일을 맞으면 소박하게나마 잔칫상을 차리고 사진도 찍죠.” 큰 언니 유씨가 아기방 한편에 붙은 백일 사진을 가리켰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이곳을 떠날 때 평온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배꼽이 떨어진 아이는 더 애틋하죠. 몸이 건조한 아기, 수유를 자주 해줘야 하는 아기, 잘 게우는 아기, 잘 때 칭얼대는 아이… 늘 아기들을 관찰하고 일지를 적다 보니 더 정이 들어요. 떠나는 아기들의 짐을 싸줄 때 그래서 기분이 정말 남달라요. 내가 키우던 아기를 보내는 거니까. 아이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또 아이들의 인생에서 극히 아주 적은 시간을 함께한 것에 불과하지만, 부디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기를 바라고 기도하죠.” 보육사 이나래씨의 눈동자에 물기가 비쳤다.

반나절만 함께 보내도 아이마다 울음소리나 칭얼거리는 소리가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길게는 수개월 살을 비빈 아기를 보내는 마음이 오죽할까.

베이비박스의 아기들이 태어나 두 번째로 안기고, 두 번째로 ‘아이고, 이뻐’ 소리를 듣게 해주는 사람들. 어쩌면 처음 기저귀를 갈아주고, 처음 분유를 먹이는 사람들. 엄마의 정을 기꺼이 느끼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 그러니까, 아기방의 사람들은 ‘둘째 엄마’다.

▶②“화장실서 낳은 핏덩이 교복에 싸서 베이비박스에 오는 심정 아시나요” 기사 보기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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