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정부의 '원팀 기조'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주요 인사들이 날 선 신경전을 벌인다.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민주당과 이에 반발하는 정부 사이에 냉기류가 흐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저녁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고당)에 불참했다. ‘감기 몸살’을 이유로 댔다. 고위당정협의회는 정세균 국무총리, 이낙연 민주당 대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석하는 최고위급 회의다.
홍 부총리의 불참은 자영업자 손실보장법 제정을 압박하는 민주당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고당 참석자 중엔 정 총리와 이 대표가 손실보상 제도화에 찬성하고, 홍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홍 부총리는 25일엔 정상 출근했다.
민주당과 기재부는 지난해 11월 주식 양도세 대주주 요건 완화를 두고 거칠게 충돌했다. 홍 부총리는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인 ‘대주주 요건’을 현행 10억에서 3억까지 낮추자고 주장했지만, 동학개미의 반발을 의식한 민주당은 10억 유지를 밀어붙여 관철시켰다. 이에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도 당정 갈등에 휘말렸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말 민주당의 ‘가덕도 신공항 검증 용역 예산 20억 증액에 동의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가 끝내 수용했다. 민주당은 부산시장 보선 승리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속도를 내겠단 입장이다.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견을 둘러싼 갈등이 여과 없이 자주 노출되는 것은 정권 임기 말 권력의 원심력이 세지고 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당정 관계가 환상적"(지난해 9월 민주당 지도부 초청 청와대 간담회)이라는 문 대통령의 평가가 무색해진 것이다.
여권 대선주자 간 주도권 싸움도 당정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세균 총리는 코로나19 손실보상 제도화에 우려를 표한 기재부를 향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비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집단 자살사회에서 대책 없는 재정건전성”이라며 기재부 공격에 가세했다. 이에 이낙연 대표는 “기획재정부, 이른바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다”라며 정 총리와 이 지사를 견제했다.
갈등이 달아오르자 문 대통령이 '교통 정리'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보건복지부ㆍ식약처ㆍ질병관리청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정부의 방역 조치에 따라 영업이 제한되거나 금지된 소상공인ㆍ자영업자에 손실 보상을 제도화할 방안도 당정이 함께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일정 범위"를 단서로 달아 홍 부총리의 체면을 살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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