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종주국의 역설' 프랑스인들은 왜 백신을 꺼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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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종주국의 역설' 프랑스인들은 왜 백신을 꺼릴까

입력
2021.01.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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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의 나라
15개 나라 백신 접종 의향 조사서 "40% 꼴찌"
젊은층, 여성 위주로 백신에 대한 신뢰도 낮은 편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제7구의 한 백신 접종센터에서 94세 노인이 화이자ㆍ바이오엔테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백신 종주국, 프랑스의 역설'

유럽 언론들이 하나같이 이같은 단어를 쓰고 나섰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세계경제포럼이 공동으로 지난달 주요 15개 나라에서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조사했는데, 프랑스가 40%로 꼴찌였습니다. 영국(77%), 독일(65%), 이탈리아, 스페인(62%)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죠.

유럽연합(EU) 27개국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미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동시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약 300만명인 프랑스의 접종 속도가 유독 더딥니다. 이달 3일까지 일주일 동안 프랑스에서는 516명만 백신을 맞았습니다. 독일(약 32만명), 이탈리아(약 18만명), 스페인(약 14만명)보다 두드러지게 낮은 수치죠.

글로벌 연구통계웹 '아워월드인데이터' 통계를 보면 프랑스의 인구 100명당 코로나19 백신 접종율은 20일 기준 1.02%입니다. 유럽국 접종율은 영국 8.01%, 덴마크 3.21%, 아일랜드 2.47%, 스페인 2.36%, 슬로베니아 2.31%, 이탈리아 2.12%, 독일 1.67% 등입니다.

사실 프랑스는 백신 종주국입니다. 광견병, 탄저병 백신을 만든 '면역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1822∼1895)의 나라이기도 하고요. 19일(현지시간) 유럽 전문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약 소비량이 많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하네요.

최근 프랑스 보건 당국이 실시한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백신 신뢰도와 관련, 연령과 성별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65세 이상 인구의 61%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다고 말한 반면 18~49세 인구 중에는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응답자가 3분의 1도 안 된다고 하네요.

프랑스 남성 53%가 예방 접종을 받겠다고 말한 것에 비해 여성 중에는 29%만이 백신 접종을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코로나19는 남성과 비교해 여성에 발병 위험이 비교적 적어서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백신 맞는 것을 꺼려한다고 하네요.

아울러 현지 매체 레제코에 따르면 의료 종사자의 19%만이 코로나19 백신을 기꺼이 받겠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료진인데, 5명 중 4명 가까이가 백신 접종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게 눈에 띌 수밖에 없죠.

프랑스 내에서 백신에 대한 두려움은 정치권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널리 퍼져 있는데요. 진보 정당인 라프랑스앙수미즈의 장 루크 멜랑숑 당수는 이달 초 "나는 백신 유형을 선택하고 싶다"며 "나는 실험용 돼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보건 정책 불신과 자유가 훼손당하는 것 거부

5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의 한 진료소에서 알랑 기뇽 박사가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앞서 처방전을 읽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 뉴시스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은 왜 이렇게 백신을 싫어하는 것일까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보건 정책에 대한 불신이 첫번째 이유로 꼽힙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 백신 접종 확인증이나 음성 판정 증명서가 있어야만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일명 '백신 강제법'을 도입하려 했다가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이튿날 보건당국은 해당 법 추진을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런던위생열대 의대(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의 백신 프로젝트 책임자인 하이디 라슨은 유로뉴스와 인터뷰에서 "(마크롱 정부의) 보건 정책 관리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②프랑스 특유의 정치 및 사회사와도 관련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파리 지정학 연구소의 지정학 전문가인 루시 기미에는 "백신에 대한 저항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며 "우리의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침입을 거부한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과거 전염병 '잘못 관리'한 스캔들 사례도

프랑스는 현지시간 지난해 12월 2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사진은 최초 접종자인 모리스테(78)가 백신을 맞는 모습. 파리=AP 뉴시스

과거 전염병과 관련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영향을 미친 듯 합니다. 1990년대 초 프랑스에서 1,000명 이상의 혈우병 환자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피를 받았던 감염 혈액 스캔들이 일어나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4명의 프랑스 장관들이 해당 스캔들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중 3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998년에는 B형 간염 백신이 다발성 경화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죠. 의학계가 백신과 질병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음에도 다음해 B형 간염 접종률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정부가 9,400만개의 백신을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 1,800만명 분을 사용도 못하고 소각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백신의 필요성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여론도 있었는데요.

일부에서는 정부가 대형 제약사의 배만 불려줬다고 비판했습니다. 라슨 책임자는 유로뉴스에 "(백신의 제작 공급이)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이 백신에 대한 신뢰를 약하게 한다"라며 "국민들이 정부가 대기업과 한통속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된 게 문제였다"라고 전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8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프랑스 내에서 백신을 맞겠다는 응답이 54%로 이전 조사들 보다는 다소 올랐습니다. 정부도 이제 백신 접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장관은 21일 TF1 TV와 인터뷰에서 "8월까지 코로나19 백신 전국민 접종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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