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네번째 신년기자회견을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열린 이번 회견은 지난 세번의 신년기자회견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소수의 기자들만 현장에 배석하고 기자들 다수가 화상 연결 및 실시간 채팅으로 질문하는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이뤄진 탓에 사뭇 다른 장면들이 연출됐다.
이날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기자들의 손에 들린 번호판이었다. 각자 부여된 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어 질문 의사를 밝힌 것인데, 이 같은 진행은 화상 연결 방식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잘게 분할된 화면 속 기자들을 대통령이 식별하고 지목하는 데 용이하도록 기자들에게 각각 고유 번호를 표시하게 한 것이다.
번호판의 도입으로 지난해까지 대통령으로부터 질문권을 얻기 위해 기자들이 벌이던 열띤 경쟁은 자취를 감췄다. 이날 기자들은 질문권을 얻기 위해 그냥 조용히 번호판을 들어 보이기만 할뿐이었다. '튀어 보이기 위해' 과장된 몸짓을 했다가 번호판이 화면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지목받을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날 진행된 리허설에는 카메라 앞 어느 위치에 번호판을 두어야 가장 잘 보이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포함됐다. 이날 기자들의 고유 번호는 청와대 출입기자단 자체 조율을 통해 부여했고 청와대에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취임 첫 신년기자회견부터 사전에 질문자와 질문내용을 정해놓는 방식 대신 현장에서 질문자를 직접 지명하고 발언권을 얻은 기자가 자유롭게 질문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런데, 회견 시간이 제한돼 있고 기자는 많다 보니 질문권을 얻기 위한 기자들간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했다.
"자, 다음 질문 해주십시오"라는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고 대통령과 눈을 맞춰보는 정도로는 지명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두 손 들기'를 비롯해 휴대폰이나 수첩을 흔드는 '소지품 흔들기'였다. 그 소지품의 종류도 다양했는데,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2018년 1월 회견에선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인형이, 지난해엔 접이식 부채가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이목을 끌기 위해 한복을 입고 나타난 기자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사상 처음으로 온·오프라인 혼합방식이 도입되면서 기자들의 복장도 달라졌다. 한 장소에 180여명의 기자가 참석한 과거의 회견에선 질문권을 얻기 위해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거나 과감한 복장을 추구한 경우가 적지 않았고, 최소한 격식을 갖춘 복장을 입었다. 그러나 각자 기자실이나 회사 사무실 또는 자택에 머물며 온라인으로 이번 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대부분 평상시 입는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현장 참석 기자가 적은 만큼 회견 장소도 드넓은 청와대 영빈관 회견장에서 규모가 훨씬 작은 춘추관 기자회견장으로 바뀌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치열한 질문권 경쟁 없이 차분한 가운데 마무리됐다. 한 기자가 온라인 연결 상태가 고르지 못해 애써 얻은 질문권을 다른 기자에게 넘기는 상황도 있었는데, 문 대통령은 이후 해당 기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박수를 친 후 말 없이 회견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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