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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1.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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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3일 오후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의 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13일 오후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의 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제발 진정하세요. 법 만드는 게 장난도 아니고. 멈추세요. 여론 잠재우기식 무더기 입법해서 현장 혼란만 극심하게 하지 말고”

들끓는 분노에 냉수 한 사발이 쏟아졌다. 16개월 정인이 학대ㆍ사망사건이 정치권까지 소용돌이치자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가 SNS에 쓴 일갈이다. 오래 장애인ㆍ아동 대상 학대ㆍ인권침해 사건을 맡아 온 그는 이번 국면에서 가장 뾰족한 진단을 내놓는다.

김 변호사를 처음 만난 건 2017년이다. 그는 당시 수개월 전 발생한 ‘목포 아동학대 사건’ 변호인단으로 뛰고 있었다. 피해 아동 보호 차 취재 응대를 자제했던 평소와 달리 근본적 오류가 너무 심각하다며 그는 인터뷰에 응했다. 돌아보면, 당시 사건은 정인이 사건과 무서울 정도로 닮았다.

만 5세 A군은 친모의 동거남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응급실에 거듭 실려갔다. 뒤로 꺾인 팔, 피투성이 머리, 전신의 다발성 골절.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는 보호자 말을 의사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 아동보호기관은 나란히 ‘학대 정황 없음’ 결론을 냈다. 친모가 ‘넘어진 게 맞고 아이가 피곤해 조사받을 수 없다’고 말한 걸 그냥 믿은 게 전부였다.

신고에도 별일이 없자, 남자는 더 안심하고 때렸다. A군은 한쪽 눈을 실명했다. 고환 제거 수술도 받아야 했다. 양팔과 다리 골절까지. 얼마나 맞았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A군뿐이었을까. 숱한 참혹의 현장을 지킨 이들이 수년째 문제를 말하고 말했다. 아동 학대 조사는 2, 3곳의 대응 주체가 중복해 맡는다. 협업은 불가하고, 책임 떠넘기기는 빈번하다. 모두 가해자의 말만 듣고 돌아간다. 수사 컨트롤타워도 없다. 규정은 자주 바뀌고, 아동복지ㆍ인권 정책 주도 컨트롤타워 역시 없다.

얘기는 여기까지 흘렀다. “1시간 내내 아이 비명이 나는 집이 있어 신고했는데, 아무도 출동하지 않더라.” 가장 아파야 할 대목은 각 사건이 무수히 반복된 제도의 실패라는 것이다. 세상에 없던 악마성도, 몰랐던 새 허점도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토록 외쳐도 왜 아이들의 아픔과 목소리는 늘 뒷전인가.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말하더라도 경청 되지 않아서, ‘표’로 환산되지 않아서, 결국 선거에 이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서가 아닌가. 비약하고 싶지 않지만 날 선 의심이 누르려야 잘 눌러지지 않는다.

최근에도 정치권이 쏟아내는 거칠디거친 법안은 아이들의 안위가 아니라 성난 어른들의 마음을 사는데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턱대고 법정형 하한을 올려 여론에 부응하려 들거나, 무조건 아동을 빨리만 분리하려는 설익은 논의가 대표적이다. 오죽하면 현장 베테랑이 “제발 멈춰달라”고 외칠까.

모두가 “정인아 미안해”라는 말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당국이 근본적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은 무엇일까.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은 ‘목소리도, 몸도 작고 여린 이들을 위한 일상의 확성기가 되겠다’는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여린 비명은 더 적극적 신고로,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제도의 결함은 입법ㆍ사법ㆍ행정부를 향한 더 단호한 요구로 모두가 더 절실히 대변할 수는 없을까. 이미 곳곳에서 아이들의 여린 울음은 매서운 호령으로 확성되고 있다. '아이가 먼저'인 수사, 정치가 현실이 될 날도 가능할지 모른다. 우리가 지금처럼만 들끓는 반성을 잊지 않은 채, 작은 목소리들을 경청한다면. 별이 되어버린 그 목소리들까지도 곱씹고 곱씹는다면.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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