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세상의 그늘에 남겨진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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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세상의 그늘에 남겨진 쓰레기

입력
2021.01.15 15:10
수정
2021.01.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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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집엔 성인 여자 셋이 살고 있다. 위층 주인집에는 성인 두 명이 산다. 매주 월, 수, 금. 쓰레기 수거 요일마다 이 집의 녹색 대문 앞에는 성인 다섯이 버린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무릎 높이만큼 쌓인다. 저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잘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디'에 오랫동안 쓰레기인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썩지 않은 나머지 내가 죽은 뒤 운 좋게 환생해 또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쓰레기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보다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가 더 그럴 듯하게 들린다.

작년 생일은 쓰레기 때문에 죄책감으로 얼룩졌다.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현관 앞에 택배 박스들이 내 키만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지인들이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으로 짧은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올 땐 '세상 참 편해졌다' 하고 말았는데 실물로 마주한 어마어마한 박스 상자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걱정을 했다. 선물 앞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낭패감이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박스를 열어 보는데 끔찍한 자본주의의 마트료시카가 따로 없었다. 큰 박스 안에 중간 사이즈 박스, 그 안에 뽁뽁이, 또 작은 박스, 그 박스 안에 플라스틱을 벗겨야지 비로소 선물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작은 선물 하나를 얻기 위한 환경오염 대장정이었다. 양 손으로 간신히 껴안을 수 있는 크기의 박스 안에 30㎖용량의 핸드크림이 덜렁 들어 있는 걸 발견했을 땐 나무야 미안해라고 외치며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지구의 X맨이 된 기분이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지구를 해치라는 특명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나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X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믿어 보려고 여러 가지 작은 노력을 하며 살고 있다. 깔끔한 포장지에 담긴 식재료를 파는 마트보단 재래시장에 가서 흙 묻은 재료를 구매해 장바구니에 담아오고 테이크아웃 음료수를 끊었고, 일회용 숟가락을 쓰지 않으려고 집에서 숟가락 통을 챙겨 다닌다. 쓸데없는 쇼핑을 하지 않으며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은 버리는 대신 주변에 나누어 주거나 중고거래 앱을 통해 무료 나눔을 한다. 방송국에서 버려지는 도시락을 집으로 들고 와 데워 먹고 일회용품은 따로 깨끗이 씻어 최소 두 번은 더 사용한 뒤 버린다. 이런 자잘한 노력 덕에 줄인 쓰레기도 많지만 쓰레기보다 죄책감이 더 많이 줄었다. 잠들기 전, 하루 동안 버린 쓰레기가 무엇인지 헤아려 보곤 한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날이면 무엇도 해치지 않은 하루였구나 싶어 몹시 뿌듯하다.

그럼에도 '편리함'이란 너무 대단한 거라서 나는 매일매일 흔들린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생필품이 다음날 상자에 담겨 문 앞에 도착해 있고, 번거롭게 설거지 할 일 없이 가볍고 단단한 일회용품을 쓰면 되고, 배달 앱을 통해 갖가지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이 편한 세상'이니까. 그래도 그런 편리함 앞에서 '세상 참 편해졌다'라고 감탄하는 대신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하고 걱정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 지구의 X맨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강이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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