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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방에 다닥다닥" 코로나 '시한폭탄' 시설에 갇힌 장애인들

입력
2021.01.18 04:30
수정
2021.01.18 15:5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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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힌 '탈시설'

편집자주

지난해 1월2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상륙했다. 그 뒤 1년간 3차례 대유행을 겪으면서 전 국민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 와중에 놓쳐버린 것들도 있다. 다섯 차례에 걸쳐 되짚어 본다.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좁은 방에 2주간 감금이 됐어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무서워요.”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살던 시절을 얘기하던 추경진(53)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추씨는 경추손상으로 사지마비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고 15년 정도의 시간을 장애인 시설에서 보냈다. 2009년 신종플루 때의 악몽이 되살아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때문이다. '보호'한다는 시설에 사실상 '감금'당한 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눈 앞에 선연히 그려져서다.

추씨는 아예 '갇혔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그때 8~9명이 함께 갇혔는데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멍하니 천장만 봤다”며 “시설이 교도소만도 못했다”고 말했다. 시설에서는 평소에도 밤 사이 화장실을 갈 때 누군가를 밟아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 여럿이 다닥다닥 붙어 지냈다고 했다.

시설 '보호'는 '감금'이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만 할 수 있었다. 오후 9시가 되면 불을 끄고 무조건 자야 했고, 다음날 오전 6시에는 무조건 일어나야 했다. 외출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중요한 이유가 있을 때만 허용됐다. 무엇보다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주치의가 있긴 했지만 제때 들여다보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추씨는 그나마 2016년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국에 시설에 있는 이들이 무척 걱정된다. “신종플루는 증상이 약하고 치료제라도 있었잖아요. 하지만 코로나19는 그게 없죠. 우리처럼 면역력 약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는데...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적극적으로 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네요.”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장애인 거주시설 집단감염 긴급 분산조치 및 코호트 격리 중단 결정 촉구 농성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장애인 거주시설 집단감염 긴급 분산조치 및 코호트 격리 중단 결정 촉구 농성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각물_최근 10년간 장애인 거주시설 현황

시각물_최근 10년간 장애인 거주시설 현황


추씨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았던 지난 1년간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관련 확진자는 17개소에서 약 200여명이 발생했다. 이 중 40%에 달하는 78명은 서울 송파구의 신아원에서 발생했다. 신아원 정원이 184명(장애인 117명?종사자 67명)임을 감안하면 42% 이상이 감염된 것이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기본적 정보도 안 줘

신아원 사례는 집단감염 취약지의 민낯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25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조치가 취해졌지만, 확진자들은 즉각 이송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환자 수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확진자가 이송된 후에도 격리조치 미흡 등으로 다시 한 번 환자가 쏟아지기도 했다.

보다 못한 장애 관련 단체들의 강한 요구로 지난 11일 비확진자들이 모두 외부 호텔로 긴급 분리조치 됐지만, 감염이 확산되던 2주 동안 신아원 내 비확진자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됐다. 이들은 누가, 몇 명이 확진됐는지 알 수 없었고 '외부와 연락하면 코로나19에 걸린다' 같은 얘기만 떠돌 정도로 제대로 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장애인 거주시설은 원래도 폐쇄적인데다 코로나19 이후 더 폐쇄적으로 변해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다”며 “장애인이 당사자임에도 대부분이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핑계 등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뇌병변으로 35년간 경기 김포시의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다 2019년 자립한 김현수(45)씨도 이 진단에 동의했다. 이씨는 “시설 안에 텔레비전이 있긴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고, 그마저도 작동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연령 기저질환자 모아둔 시설은 '시한폭탄'

장애인거주시설의 취약함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개 방에 3~4명이 거주하는 경우가 35.6%로 가장 많았고, 5~6명이 26.8%이었다. 7명 이상도 26.2%에 달했다. 추경진씨와 김현수씨는 “상상이 안 되겠지만 12~13명이 3평 남짓한 방에서 함께 생활한 적도 있다”거나 “2.5평 남짓 단칸방에 성인 4~5명이 다닥다닥 붙어 생활하다 보니 잘 때는 서로 몸이 겹쳐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기본적인 거리두기조차 불가능한 여건이라는 얘기다.

거기다 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대부분 고연령자들이다. 한번 시설에 수용되면 대개 10~20년 정도 머물기 때문에 50세 이상이 31.1%에 이른다. 50세 이상 기준이 중요한 건 코로나19 치명률이 50대부터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40대 0.09%에 머물던 치명률은 50대 0.27%, 60대 1.25%, 70대 6.05%, 80대 18.97%로 치솟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백신 우선접종대상자를 선정할 때 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50대 이상'도 포함시켰다. 많은 경우 기저질환을 갖고 있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그래서 장애 관련 단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탈시설 원칙의 중요성이 한층 더 선명히 드러났다고 강조한다. 장애인들이 시설에 집단적으로 격리 수용되는 게 아니라 보통의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탈시설 원칙은 오래된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장애인 탈시설'을 선정했다. 2018년에 내놓은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2년)’에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종합계획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안은 지난해 12월에야 발의됐고, 탈시설지원센터도 ‘중앙지역사회전환지원센터’로 이름을 바꿔 올해 1곳 문을 연다. 이마저도 배정된 예산은 고작 2억6,900만원에 불과하고,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활동의 법적 근거조차 없다.

시각물_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 연령대

시각물_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 연령대


시각물_중증장애인 거주시설 내 방당 거주인원

시각물_중증장애인 거주시설 내 방당 거주인원


지지부진한 탈시설 ... "정부의 장기계획 필요"

반면 장애인 시설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국내 장애인거주시설 수는 2010년 452개소에서 2019년 1,557개소로 늘었고, 시설에 머무는 장애인 수는 2019년 2만9,662명에 달했다. 올해 장애인거주시설 관련 예산은 5,804억3,6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10.1% 늘었다. 그에 비해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 예산은 66억6,800만원으로, 지난해 65억3,400만원보다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탈시설을 하겠다면서 시설 예산을 늘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큰 틀에서의 장기계획이 없다 보니 예산마저 주먹구구식으로 짜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만들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로드맵은 아직 없다. 정부는 2019년 4월 △대규모 시설 및 부적절 운영시설 개편 △현재의 장애유형별 거주시설을 기능별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개편 등의 내용을 담은 탈시설 초안을 공개한 바 있지만 지금도 초안 상태에 머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초안을 중심으로 확정안을 준비 중“이라며 “정부도 탈시설에 관심을 가지고 적당한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사람이 먼저라더니 갈수록 탈시설 등 장애인 인권에 관련된 정책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계속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며 “이 정부 또한 ‘장애인은 시설에서 죽어야 하는 사회’를 사실상 조장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돕는 프리웰의 김정하 이사장도 “탈시설은 의지와 철학의 문제“라며 “정부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고 안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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