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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발맞추는 좌충우돌 경찰 성장기

입력
2021.01.16 04: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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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넷플릭스 '브루클린 나인-나인'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제목 그대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99번 관할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제목 그대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99번 관할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새해 첫 달의 절반이 지났을 뿐인데 가계부의 ‘문화/여가’ 카테고리로 지정된 예산이 또 초과했다. OTT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을 추천하는 지면에서 털어놓기는 쉽지 않은 고백이지만, 이럴 때면 나는 ‘구독’ 항목의 서비스부터 차례로 해지하며 예산을 확보한다. 여기서 자동 구독 연장을 막는 팁 하나를 알려주자면, 해지해두었다가 보고 싶은 작품이나 봐야 하는 작품이 있을 때 새로 구독과 동시에 구독 해지를 신청하라는 것이다. 딱 한 달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세팅이다. 이 방법을 통해 언제 보고 싶은 작품이 생길지 몰라서 구독을 하염없이 유예하느라 매달 새 나가던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새로 가입할 때의 수고로움만 감수하면 된다.

단, 넷플릭스는 예외다. 시시때때로 보고 싶어지고,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어야 하는 작품이 넷플릭스에만 있기 때문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 일하다가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잠이 안 오지만 무겁거나 긴 시리즈를 보고 싶지는 않을 때 나는 언제나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본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끊을 수 없다. 바로 이게 OTT 플랫폼들이 고전 시리즈 명작 영화나 시트콤을 미끼 콘텐츠로 잡아두고 새로운 작품을 쌓아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무려 17년 전에 종영된 ‘프렌즈’가 여전히 넷플릭스의 시청 횟수 상위권을 유지 중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에게 있어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며 쉼 없이 복습하는 장르는 시트콤이고, 최근 5년간 가장 애정도가 높은 작품은 ‘브루클린 나인-나인’이다.

그러니 이 작품의 여섯 번째 시즌이 드디어 넷플릭스에 공개된다는 소식은 내가 올해 전해 들은 최초의 복음이 아닐 수 없었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미국의 방송사 FOX에서 다섯 번째 시즌까지 공개된 후, 조기 종영의 위기에 빠져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NBC로 옮겨 방송된 역사가 있다. 그 과정 때문인지 한국 넷플릭스에는 시즌5가 마무리된 2018년 이후 업데이트가 뚝 끊겨있었다. 여섯 번째 시즌의 도착은 2년이 넘는 기다림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고, 그래서 아껴보고 싶었지만 다짐이 무색하게 결국 또 밤을 하얗게 세며 앉은 자리에서 끝내고 말았다.

제이크(가운데)가 홀트 서장과 ‘팀 99’이라고 불리는 관할서의 동료 형사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서사다. 넷플릭스 제공

제이크(가운데)가 홀트 서장과 ‘팀 99’이라고 불리는 관할서의 동료 형사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서사다. 넷플릭스 제공


몰아보기를 부르는 시트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제목 그대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99번 관할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 관할서에 새로운 서장 레이먼드 홀트(안드레 브라우퍼)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작자이기도 한 앤디 샘버그가 연기하는 주인공 제이크 페랄타는 형사로서 실력은 좋지만, 경쟁심이 지나치게 강하고 오만하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캐릭터다. 제이크가 홀트 서장과 ‘팀 99’이라고 불리는 관할서의 동료 형사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서사다. 시즌1의 첫 에피소드에서부터 제이크가 해결하지 못한 단 하나의 문제로 소개된 ‘자아 성장’의 과정에 함께하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흥미로운 점은 제이크가 성장하면서 작품 또한 성장해나간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비교적 인종구성과 성비가 다양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으로 경찰이라는 공동체를 작은 미국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그 중심에 뉴욕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흑인 게이 경찰로 설정된 홀트 서장을 위치시켰다. 이 권력 관계의 반전으로 재미를 주기도 했던 이 시리즈는, 시즌을 거듭해가면서 계속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힘을 동력으로 삼아 변화해나가고 있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보면 8편 ‘그의 말, 그녀의 말’ 에피소드는 시즌6의 핵심 주제를 담은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이 에피소드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민하는 에이미 산티아고(멜리사 푸메로)를 통해, 미투(#metoo) 시대 이후 일하는 여성이 겪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에이미는 여성인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고 가해자를 처벌하게 만들려고 하지만, 또 다른 여성 형사인 로사 디아즈(스테파니 비트리즈)는 피해자가 복잡하고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게 하는 것보다 합의해서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정의가 실현되어도 여성이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현실은 2보 전진했다가 다시 1보를 후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좌충우돌하고 하찮은 사건을 벌이는 이들은 여전히 웃긴 친구들이지만 때로 진지해지고, 무거워지는 것도 감수한다. 넷플릭스 제공

좌충우돌하고 하찮은 사건을 벌이는 이들은 여전히 웃긴 친구들이지만 때로 진지해지고, 무거워지는 것도 감수한다. 넷플릭스 제공


이 둘 중에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이 에피소드는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에이미가 끝까지 피해자와 함께 싸워 가해자를 처벌하지만, 로사가 말한 대로 피해자는 결국 직장을 떠나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피해자의 고백으로 인해 동료의 또 다른 고발이 이어지자, 로사는 앞선 대사를 전혀 다른 뉘앙스로 한 번 더 말한다. “2보 전진에 1보 후퇴는 그래도 한 발 나아간 거야”라는 로사의 대사야말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다시 뒤돌아가게 되더라도, 더 나아가려고 애쓰고, 잘못은 고치고 반성할 때 인간은 성장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캐릭터들은 시트콤 안에서 과장되게 부여받은 설정 이상으로 현실 세계에 발 붙인 정체성, 위치, 역할을 부여받고 변화해나간다.

시즌6의 가장 아쉬운 점은 가장 매력적인 시트콤 캐릭터로 중 하나일 지나 리네티(첼시 페레티)가 정규 캐릭터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찾아오는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성숙의 지표다. 지나와 ‘팀99’은 서로에게 조언을 건네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음 단계로 간다. 지나는 팀을 떠나며 오랜 친구인 제이크에게 말한다. “많이 컸네.” 글자로만 보면 주로 영화에서 “많~이 컸다?”는 표현으로 통용되는 조롱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있는 그대로의 의미다. 제이크와 지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했고, 컸다. 여기서 더 나은 방향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과 약점을 받아들이고, 타인과 나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때로 관계와 일 모두에서 실패를 겪으면서도 자신이 가야 하는 길로 향해 가는 방향을 의미한다. 웃기는 것, 재미를 주는 것만이 절대적인 목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루클린 나인-나인’이 변화와 성장을 위해 웃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좌충우돌하고 하찮은 사건을 벌이는 이들은 여전히 웃긴 친구들이다. 다만 계속 고민한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 때로 진지해지고, 무거워지는 것도 감수한다. 하염없이 가볍던 시즌1의 제이크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변화다. 시즌6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제이크가 퇴사하려는 서장을 붙잡으며 고백하듯이 제이크는 서장과 동료들 덕분에 “훌륭한 경찰, 성숙한 인간”이 되었고, 되어가는 중이다.

이 시리즈는 시즌을 거듭해가면서 계속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힘을 동력으로 삼아 변화해나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이 시리즈는 시즌을 거듭해가면서 계속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힘을 동력으로 삼아 변화해나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무엇보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웃음보다 빨리 낡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품이다. 차별적인 유머를 더는 작품에서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모두가 함께 가야 하는 옳은 방향이 어디인지 찾아가기 위해 애쓰는 그 길의 방향을 끊임없이 세밀하게 다듬어가면서, 웃음은 현재형으로 갱신된다. 그렇게 제이크와 함께, 또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브루클린 나인-나인’도 성장한다.

모순적이지만 바로 이 이유로, ‘브루클린 나인-나인’이 시즌을 이어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지난해로 예정되어 있던 8시즌의 방영을 2021년으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에는 팬데믹 뿐만 아니라 지난해 5월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이어진 흑인 인권 운동(Black Lives Matter)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의 1차 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다음 시즌을 위해 집필된 대본 일부가 폐기되었고, 전면 수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 한 번 사회와 시대의 맥락 안에서 제대로 호흡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인물들을 성장하게 하고, 고쳐나가기로 한 것이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웃음보다 빨리 낡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웃음보다 빨리 낡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변화하는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온 이 시리즈는 팬데믹과 미국 대선을 거치며 변해버린 세상 속으로 과연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게 될까? 올해 방영이 예정된 시즌8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세계는 몰라도 한국의 시청자들은 아직 넷플릭스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시즌7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넷플릭스가 하루라도 빨리 일곱 번째 시즌의 업데이트 소식을 알려주기를. 우리에게는 아직 한 시즌 열 세개의 에피소드, 대략 네시간 반 만큼의 웃음과 성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윤이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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