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채권금리 경기부양 기대감에 '급등'
금리 오르면 외국자금 빠져 나가? 증시에 '빨간불'
금리 1.2% 넘으면 위험...미 연준 태도 변화도 관심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지자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갑자기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 때문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면 정부 재정을 풀어 1조달러 규모의 기반시설 건설 투자를 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공언했고, 이에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채권을 팔아치우면서 채권 가격이 급격히 하락했다. 이에 10월만 해도 1.59% 수준이었던 채권 금리가 대선 일주일 뒤에는 2.26%까지 급격히 솟아오르더니, 약 두 달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당시 이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 효과는 우리나라에도 즉각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자금이 달러로 몰리면서 원·달러 환율이 1,200원까지 상승했고, 환손실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상승 흐름을 타고 있던 국내 주식 시장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4년이 지난 올해, 또 한 번의 미국 선거를 지나치며 비슷한 양상이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투자의 '바로미터'로 삼고 있는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부풀 대로 부푼 국내 증시가 숨 고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급등하는 美채권금리... 인플레이션 신호탄일까
11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2%포인트 상승한 연 1.15%를 기록했다. 지난주 월요일(4일)만 해도 0.93%였던 금리가 불과 일주일 만에 0.22%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보통 채권 금리는 0.01%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큰 상승폭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1%를 넘은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3월 중순 이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 금리는 투자자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반비례한다. 향후 불황이 심해질 것이라고 여기면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더 사들이고, 따라서 국채 가격이 올라 금리는 떨어진다. 반대로 향후 경제 전망에 기대감이 커지면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리가 높아진다. 국채 금리 상승은 시중 금리도 밀어 올리고,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금리 상승과 물가 상승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이번 미 국채 금리 급등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찾아온 '블루 웨이브(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차지한 상태)'의 영향이 크다. 민주당이 대규모 추가 부양책을 꺼내 들 것이라는 기대감에 채권 금리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가 "2022년까지 제로(0) 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 부양책 기대까지 덧대어지면서 인플레이션 전망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3, 4월까지는 채권 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국채 금리 1.2% 넘으면 대피하라" 증시 경고등
문제는 미 국채 금리 상승이 국내 증시에 끼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데 있다. 미 국채 금리 급등은 단기간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인은 11일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 1조8,900억원어치 이상을 던졌고, 이튿날도 순매도를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계속 오르면 주식 시장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전 세계 자산의 중심인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다른 자산이 상대적으로 비싸 보일 수밖에 없다"며 "미 채권 금리가 1.2%점을 넘어가면 주가 상승세가 멈출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미 국채 금리 상승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미국 연준의 태도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채 금리 상승 속도가 과도하게 빨라지면 연준이 기존 입장을 바꿔 예상보다 빠르게 완화적 태도를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이번달 제롬 파월 연준의장의 입에서 기준금리와 관련한 언급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연준 정책 기조 정상화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면서 국내 증시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금리가 1.2%를 넘는다고 해서 바로 국내 주가가 크게 망가진다거나 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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