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임 기간 깨진 핵합의 복원 노려
"한국, 美 향한 이란 저강도 위협 희생양"
'2021년형 핵합의'? 고민 커지는 바이든
이란이 출범을 코 앞에 둔 조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를 향해 사전 ‘무력 시위’를 확실히 했다. 우라늄 농축 농도 상향과 한국 국적 화학물질 운반선 나포 모두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해 경제제재 해제 등 반대 급부를 노리는 협상 전략으로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극도의 고립에 시달렸던 이란이 행동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에 선택을 요구한 것이다. 졸지에 한국은 ‘희생양’(CNN방송)이 됐고,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취임 선서를 하기도 전에 어려운 외교적 숙제를 떠안게 됐다.
4일(현지시간) 이란은 한국 선박 나포 외에도 미국을 단단히 자극하는 조치를 내놨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포르도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높이겠다고 통보한 것. 하루 새 두 건의 깜짝 도발에 미 행정부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무부는 “선박 억류를 즉각 해제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동참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뒤 “우라늄 농축 상향은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라고 비난했다. “이란이 핵 강탈을 강화하고 있다”는 거친 수사도 썼다.
두 이슈는 전혀 다를 것 같지만 이란이 바이든 행정부에 보내는 ‘협상 요구서’나 다름 없다는 평가다. 우선 선박 나포는 “한국 은행들에 동결된 원유 대금에 접근하기 위해 바이든을 설득하도록 한국에 압력을 넣은 것”(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바버라 슬레이빈)이라는 게 이란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우라늄 농축도 마찬가지다. 당초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는 농축 한도를 3.67%로 정했다. 물론 핵무기에 사용되는 농축도(90% 이상)에는 못 미치지만, 8배 가까이 농축률을 대폭 끌어 올린 것은 2018년 핵합의를 일방 탈퇴한 미국에 복귀를 재촉하는 신호가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집권기 내내 양국 관계는 파행을 거듭했다. 미 행정부는 핵합의 탈퇴 후 이란 제재 수위를 점차 높였고, 그 과정에서 이란은 물론 핵합의 탈퇴를 비판했던 유럽 동맹국들과도 심각한 불화를 겪었다. 지난해 1월 미군이 단행한 이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폭살은 중동 전역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걸프 지역은 올해도 중동 최대 화약고로 꼽혔다. 솔레이마니 사망 1주기에 트럼프 퇴임까지 맞물리면서 이란의 무력 도발 가능성이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 미 국방부가 3일 본국 귀환 중이던 항공모함 니미츠호를 이란 근처에 계속 배치하기로 방침을 변경한 것도 이란의 돌발 행동을 억제하려는 의도였다.
미국의 촘촘한 감시망이 계속되자 이란은 결국 ‘저강도 위협’을 택했다. 무력 충돌로 가지 않는 선에서 차기 미 행정부와 협상 지렛대로 삼을 만한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CNN은 외교 당국자를 인용, “나포와 우라늄 농축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미국을 찔러 보려 신중하게 선택된 노림수”라고 전했다. 이런 관점에서 우방 한국이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희생양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란의 속내를 떠나 바이든 당선인은 상당한 난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미 핵합의 복귀를 약속했는데, 협상이냐 아니냐를 강요하는 이란의 도발로 유화 일변도 정책만 고수할 수 없게 된 탓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도 전날 “이란과 핵협상에 더해 탄도미사일 문제도 다루겠다”고 밝혀 강온 양면 전략 추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란을 불온시하는 미국 내 여론도 큰 만큼 핵합의 복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상원 국토안보위원장을 지낸 조지프 리버먼 전 의원은 NBC방송 인터뷰에서 “바이든 당선인은 유럽ㆍ중동 동맹국들과 협력해 최근 지역 현실을 반영한 새 이란 정책을 고민한 후 ‘2021년형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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