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해봐라" 역발상이 대통령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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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해봐라" 역발상이 대통령 살린다

입력
2021.0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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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현 정권 비리 수사 놓고 1년여 극한 갈등
의혹 남겨두면 차기 정권서 재수사 불가피
야당 공세에서 벗어나 민생 전념 가능해져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역사를 출발한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인 KTX-이음(원주-제천) 열차에 탑승해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원주=왕태석 선임기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가 무산되자 “다시 아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담벼락에 욕이라도 시작해 보자”고 말했다. 친문 진영에서는 ‘다시 아픈 후회’란 말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서거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차곡차곡 분노를 쌓고 있다”거나 “우리 ‘이니’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지지자들 가운데서 나온다. 법원 판결에 대한 강성 지지층의 충격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시작된 지난 1년여 여권과 윤 총장 간 일대 혈전의 배경에는 ‘노무현 트라우마’가 있다. “윤석열을 놔뒀다가는 문재인 대통령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극한 대결 불사로 나타났다. 검찰의 정권 비리 의혹 수사가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탓이다.

하지만 친문 그룹의 생각이야 어쨌든 나타난 결과는 비참했다. 정권이 휘청거릴 만큼 지지율이 급락하고 총선 때까지만 해도 오지 않을 듯했던 레임덕이 눈앞에 닥쳤다. 문재인 정부를 지탱해 온 도덕성과 공정의 이미지가 실추됨으로써 정권에 미친 무형의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집권 세력의 그간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봐야 한다.

가정을 해 보자. 일련의 현 정권 관련 수사를 그대로 놔뒀으면 어떤 양상이 펼쳐졌을까. 조국 부부는 검찰의 전방위 수사 끝에 무더기 혐의로 기소됐다. 여권이 윤 총장에게 압박을 가했지만 수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뭔가 내놓지 못하면 죽는다”는 위기감에 검찰 수사 강도가 더 높아진 측면이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도 양상은 다르지 않았을 게다. 검찰은 4ㆍ13 총선을 불과 두 달 여 앞두고 문 대통령의 친구였던 송철호 울산시장을 비롯해 청와대 전ㆍ현직 참모 13명을 전격적으로 기소했다. 임 전 실장도 조사를 받았다. 사실 할 만한 수사는 거의 다한 셈이다. 한참 진행 중인 월성 원전 수사도 대통령의 공약이자 정책과 관련된 터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검찰이 감사원이 지적한 경제성 조작과 문서 파기 이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경우 역풍이 불 수도 있다.

유념해야 할 것은 여권의 희망대로 정권 관련 수사가 현 상태에서 더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향후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야당의 정권 교체이건 여권의 정권 재창출이건 적당히 덮인 사건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많다. 전임 정부 실책 비판과 차별성 강조를 새 정부 개혁 동력으로 삼아 온 게 한국 권력 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발상을 제안한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이 “권력과 관련된 비리 수사에 철저히 협조하겠다”고 선언하라는 것이다. 월성 원전1호기와 울산 선거 개입, 라임ㆍ옵티머스 로비 의혹 등 청와대가 관여된 것으로 의심받는 모든 수사에 선제적으로 응하라는 얘기다. 이는 남은 임기 동안 끝임 없이 퍼부어댈 보수 야당의 공세에서 벗어나 민생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일찌감치 억측을 털어버림으로써 퇴임 후 안녕을 보장받는 길이기도 하다.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는 윤 총장으로서도 마구잡이식 수사로 재판에서 유죄 입증에 실패한다면 그의 ‘정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결단은 길 잃은 검찰 개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공수처 출범과 수사권 조정으로 제도적 개혁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남은 반쪽인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확실한 장치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검찰에 ‘개의치 말고 조사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이 반대하자 남긴 메모가 있다. “검찰, 지켜주자. 그리고 바로 세우자.” 문 대통령이 떠올려야 할 글귀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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