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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발병 예측 모델 개발해 조기 발견 길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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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발병 예측 모델 개발해 조기 발견 길 열었다”

입력
2021.01.05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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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 듣는다]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제는 조현병 발병을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기법이 개발돼 치료 패러다임도 바뀔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제는 조현병 발병을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기법이 개발돼 치료 패러다임도 바뀔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던 조현병(調絃病)의 유병률이 1% 정도로 비교적 흔한 정신 질환이다. 한창 활동할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에 걸쳐 주로 발병하기에 환자의 삶이 피폐해질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손실이 매우 크다.

조현병은 특히 재발을 반복할수록 뇌 손상이 생기고, 치료가 더 어려워지므로 조기 발견해 빨리 치료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라 조현병이 나타나기 전에 발병 가능성이 큰 사람을 선별해 예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국립정신보건원(NIMH)에서는 조현병 발병을 조기에 알아내기 위해 5년간 600억원가량을 투입하는 ‘정신증 고위험군 원인 규명과 발병 예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조현병 치료의 최고 권위자’인 권 교수를 만났다. 권 교수는 "조현병 발병을 머신 러닝 기법으로 조기에 예측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며 "정신 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권 교수는 2004년 국내 최초로 조현병 고위험군 클리닉인 서울대병원 ‘청년클리닉(www.youthclinic.org)’을 개설하는 등 조현병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해 진력하고 있다.

-조현병은 치료가 어렵고 재발이 잦은데.

“조현병 원인을 아직 정확히 밝히지 못해 단순히 증상을 개선하는 치료에 머물고 있다. 증상이 호전돼도 그 아래 존재하는 뇌 신경회로ㆍ신경세포ㆍ유전자 이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증상이 나아져도 약물 치료를 계속하지 않으면 재발할 때가 많다. 환자의 20~30% 정도는 어느 정도 치료에 성공하면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환자는 약을 중단하면 조현병이 다시 악화되기에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 약물 치료에 반응이 없는 경우도 10~20%나 된다. 문제는 조현병이 반복적으로 재발하면 뇌 손상이 더욱 진행되면서 치료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다행히 최근 뇌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더 좋은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정신증 고위험군이란.

“다른 모든 병도 그렇지만, 조현병 역시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특히 예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조현병처럼 뚜렷이 망상이나 환청이 생기지는 않지만, 이상 감각ㆍ착각ㆍ왜곡된 사고ㆍ예민해진 청각ㆍ평소의 자신이 아닌 듯한 느낌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조현병 환자가 예전보다 몸 기능이 점점 떨어지면 가족들이 이를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 역학조사에 따르면 정신증(Psychosisㆍ조현병, 양극성 장애, 주요 우울증 등을 포괄해서 일컫는 용어) 발병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은 전 인구의 3% 정도다. 이들을 선별해 조기 중재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신증 고위험군으로 판명됐다면 2~3년 이내 25~30% 정도가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 등 정신 질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

-최근 조현병으로 진행될 위험도를 분석하는 예측 모델을 개발했는데.

“우리 연구팀과 이태영 양산부산대병원 교수와 함께 10년 이상 정신증 고위험군을 추적한 결과, 30% 정도가 조현병 등 정신 질환이 생겼다. 특히 지능지수ㆍ언어 기억ㆍ사회 인지 기능ㆍ사회적 기능 수준 등에 결함이 있으면 발병 위험이 더 높았다.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ㆍ기계 학습) 기법으로 발병 예측 모델을 개발해 전체를 초고위험군ㆍ중등도위험군ㆍ저위험군으로 분류했다. 초고위험군은 대부분 발병했지만 저위험군은 아무도 병이 생기지 않았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정신의학(Psychological Medicine)’ 최신호에 발표됐다. 이런 예측 모델이 정확하다면 발병 위험이 높은 이들만 선별해 병이 생기기 전부터 환자 맞춤형 예방 치료를 할 수 있다. 이는 정신 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떨 때 정신 질환 발현 여부를 평가해야 하나.

“몸과 마음이 위축되거나 고립된 생활, 대인 관계 어려움, 학교ㆍ직장 생활에서 기능 감소, 예민해지거나 과도한 불안, 집중력 감소, 의심이 많아지거나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하거나,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는 등의 증상이 생기면 평가를 받는 게 좋다. 특히 청소년기는 뇌 발달 측면에서 변화가 격렬한 시기라 이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 그 사람의 뇌 기능이나 정신 건강이 결정된다. 치료 초기에는 주로 스트레스 관리, 인지 행동 치료, 정신 치료 등 비약물적 치료를 시행한다. 증상이 심해지면 항우울제나 항정신 질환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정신 질환 분류나 최근 치료 추세는.

“정신 질환 진단은 현상학(現象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생각, 감정, 행동 등을 보고 조현병, 양극성 장애, 우울증 등으로 진단한다. 하지만 질병의 병태 생리를 밝히고 이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이럴 경우 증상 개선을 위한 치료가 아니라 원인을 치료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 질환은 아직 정확한 단일 원인을 찾기 어렵고, 유전적 특징, 성격이나 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므로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에 따라 서로 다른 뇌 기능 이상이 있기도 하고, 다른 질환이 비슷한 뇌 병변을 가질 때도 있다. 따라서 향후 진단은 현상학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분류(biotyping)가 이뤄져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치료는 현재 도파민 차단제가 주로 쓰이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를 타개하려면 도파민 분비를 조절하는 글루타민 계열 등 다른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신경 조절술(neuromodulation)인 경두개 자기 자극술(rTMS), 경두개 직류 자극(tDCS), 감마나이프 등으로 뇌 신경 회로 기능을 바꾸는 치료에도 최근 많은 진전이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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