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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비발디가 '사계'를 다시 쓴다면

입력
2020.12.31 14:00
수정
2020.12.31 17:11
25면
0 0
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Kate Carr

ⓒKate Carr


음악을 통해 기후위기를 깨우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는 전염병만큼이나 우울하고 난처하다. 그저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 등의 식상한 표어로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급박히 전할 길이 없다. 폴란드의 음악가 시몬 바이스(Szymon Weiss)는 이 치명적인 위기를 일깨우기 위해 ‘비발디의 사계’로부터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이 곡은 사계절이 가져온 자연과 일상의 변화를 음표로 풀어낸 음악적 풍경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비발디가 현재의 기후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때도 여전히 계절의 풍광을 낭만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4계가 아니라 3계, 혹은 5계로 악장 수가 대거 뒤틀리진 않을까. 그러므로 폴란드의 음악가 시몬 바이스는 비발디의 사계를 기후위기에 걸맞게 재해석한다. 곡명은 이렇게 붙인다. ‘잃어버린 계절(The Lost Seasons)’


'잃어버린 계절' 유튜브 캡처(https://youtu.be/PYCR39-8YQw)

'잃어버린 계절' 유튜브 캡처(https://youtu.be/PYCR39-8YQw)


‘잃어버린 계절’은 2018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유엔기후 변화회의에서 초연되었다. 위대한 작곡가의 명곡이라 재창작하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는데, 그런 와중에도 줄곧 염두에 두었던 생각은 ‘비발디가 기후위기를 겪었더라면 어떤 음향으로 묘사했을까’였다고 한다. 재창작은 비발디의 원곡과 달리 계절의 경계부터 무너뜨려 버린다. 자연풍광의 찬란한 묘사 대신 가뭄과 태풍, 홍수와 산불 등의 재해를 음악적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 여름 악장에선 오리지널 선율에 강우량의 폭발적 증가를 덧대는가 하면, 8비트 게임에서 가져왔다는 레이저 사운드로 가뭄에 쫙쫙 갈라진 대지를 처참히 묘사하기도 한다.

비발디의 원곡은 본디 ‘화성과 창의의 시도’란 제목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반짝이는 영감으로 균형을 이루던 사계의 화성은 기후위기의 난장 속에서 고약한 균열로 비틀거린다. 원곡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던 청중에겐 생경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기후위기의 경각심은 이처럼 음악적인 인지를 통해 각성되었건만, 정작 초연의 무대였던 제24차 유엔기후변화회의는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에 그쳤다.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으로 유지하자는 공약에 강화된 구속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뜨거워지는 지구의 노래' 유튜브 캡처(https://youtu.be/8AapIrJe4OA?t=94)

'뜨거워지는 지구의 노래' 유튜브 캡처(https://youtu.be/8AapIrJe4OA?t=94)


‘잃어버린 계절’이 기후위기의 예술적인 해석이었다면,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지구온난화를 경고한 음악도 있다. 지리학자 다니엘 크로포드는 지구의 온도 변화를 첼로 음색으로 변환시켜 ‘뜨거워지는 지구의 노래(A song of our warming planet)’를 발표했다. 1880년부터 최근까지 지표면과 해수면의 온도변화 데이터를 오선지의 음표에 일일이 대응시켜 기후위기의 악상을 그려낸 것이다. 첼로의 음역은 3개의 옥타브를 망라하는데 그중 가장 낮은 음인 개방현 C음은 지난 140년 동안 가장 추웠던 해인 1909년과 짝을 이룬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첼로 특유의 깊이 있는 울림이 저음역을 활보했건만, 1940년 이후부턴 그 동선이 중음역대로 본격 높아지기 시작한다. 지표면의 온도가 0.03도씩 상승할 때마다 첼로도 반음씩 올라가는데, 급기야 1990년대 이후부턴 음정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악기의 과부하를 느끼게 한다. 마지막 음은 핏대 높인 절규와도 같다. 온난화를 멈추지 못한다면 인간의 가청 범위를 넘어 고막을 찢는 듯한 음을 연주해야 할지 모른다.

‘잃어버린 계절’도 ‘뜨거워지는 지구의 노래’도 마냥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지구에 끼치는 인류의 해악에 대한 의식적인 청취를 요구하는 음악이다. 일종의 조기경보 시스템처럼 예술은 미래를 위해 꾸준히 경고해 왔다. 인간이 누리는 현재의 편리함이 곧 지구의 고통임을 자각한다면 불협화음으로 치솟는 악상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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