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기후위기... 재난의 도돌이표를 막아라! 구호를 넘어서 실천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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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기후위기... 재난의 도돌이표를 막아라! 구호를 넘어서 실천할 때

입력
2021.01.01 04:30
수정
2021.01.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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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출간 예정 도서로 본 시대적 과제

전 세계를 집어 삼킨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2020년은 사라져버렸다. 2021년엔 새로운 일상을 회복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신개념 홀로그램 LED 디스플레이에 '2021'란 숫자 영상이 나타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2020년은 통째로 ‘증발’한 해였다. 무방비로 겪어낸 재난의 대가는 혹독했다. 일상은 무너졌고, 사회적 약자들은 더 큰 고통에 신음했다. 팬데믹 2년 차, 우리는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 32곳 출판사들의 출간 예정 목록(가제)에서 2021년 시대적 과제를 정리해봤다. 팬데믹, 기후재앙, 불평등까지 인류의 존망을 다투는 위협 앞에서 구호를 넘어 행동을 촉구하는 책들이 많았다.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재난은 더 빠르고 더 가혹하게 우리를 찾아올 것이란 절박한 경고다. 마침 2021년은 21세기가 시작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 더는 굼떠 있을 수 없는 ‘책임의 시대’가 도래했다.

①기후재앙-‘지금, 여기’ 할 수 있는 것부터


지구온난화로 북극곰들의 삶의 터전인 해빙(海氷)이 녹아내리면서 북극곰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진 속 북극곰도 먹을 것을 찾지 못해 매우 야윈 상태다. 이대로라면 2100년에는 더 이상 북극의 흰 곰을 볼 수 없게 될 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폭주하는 인간의 지구 파괴욕망이 팬데믹 사태를 야기했다는 깨달음 덕분일까. 올해 유독 기후위기, 환경과 생태에 관한 책들의 출간이 두드러진다. 기후 재앙을 경고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 지침을 동반한 책들이 많았다.

2월에 나오는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김영사)은 단연 기대작이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2050년. 매년 배출되는 온실가스 510억 톤을 제로로 만들지 못하면 지구의 존립은 장담할 수 없다고 빌게이츠는 경고한다. 세계 각국이 실천할 수 있는 탄소 제로 프로젝트와 청정에너지 개발 계획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하이브리드' 지식인 브뤼노 라투르는 인류세 시대, 인간이 아닌 자연을 중심으로 인간 세계, 특히 정치를 재편해나가야 함을 ‘브뤼노 라투르, 착륙하라’(이음)에서 역설한다. 전 세계 19개국에서 900여명의 연구진이 모여 2019년 9월 발동한 세계 최대 규모의 북극 탐사 연구팀 '모자익프로젝트'가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북극의 현재를 기록한 '녹아내리는 북극'(동아시아)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날 것 그대로 전한다.

‘소심하고 게으르지만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추수밭)는 가볍고 쉽게 환경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일러준다. ‘분해’의 시점으로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한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하다’(사월의책), 기업이 폐기해버린 ‘수선해서 고쳐 쓰는 욕망’을 소개하는 ‘리페어컬처’(양철북), 지구상 가장 중요한 생명체인 식물의 힘을 일깨운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더숲)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책들이다.

②불평등-쪼개 볼수록, 대안은 많아진다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서초구 방배동은 부와 가난이 공존하는 곳이다. 다세대주택 뒤로 높게 솟은 주상복합과 아파트 단지는 한국 사회의 주거 불평등과 양극화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한호 기자

지난해 불평등 담론의 중심은 ‘사회적 상속’이었다. 토마 피케티의 ‘기본자산제’를 시작으로 정부가 사회 진출 청년들에게 종잣돈을 주자는 제안이 봇물을 이뤘다. 올해는 불평등의 면면을 잘게 쪼개 살피는 게 특징. 불평등은 거대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 우리 삶 곳곳에 문신처럼 패여 있음을 환기시켜준다.

치아에 새겨진 불평등의 흔적을 찾아나선 ‘아, 해보세요’(후마니타스), 건강권의 법적 지위와 현장의 목소리를 녹여낸 ‘불운이 부정의가 될 때’(동아시아), 진보교육자들의 방관 속에 교육 불평등이 심화됐음을 꼬집은 ‘학교와 계급재생산’(이음)이 대표적이다.

분석은 더 탁월해졌다. 2019년 ‘불평등의 세대’에서 정치경제적 권력 자원을 장기 독점한 86세대 책임론을 제기했던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신간 ‘불평등의 기원’(문학과지성사)에선 ‘쌀, 재난, 국가’를 키워드로 한국의 불평등, 경쟁, 비교의 문화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흥미롭게 풀어낸다. 중간계급이 허위 이데올로기임을 밝히는 ‘우리는 결코 중간계급이었던 적이 없었다’(산지니), 네트워크 이론으로 불평등 원인과 대책을 고민한 ‘휴먼네트워크’(바다출판사)도 눈길을 끈다.

대안은 결국 자본주의를 고쳐 써야 한다는 데 강조점이 찍혔다. 이른바 ‘자본주의 리부트’(어크로스)다. 미국 하버드대 레베카 헨더스 경영학과 교수는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비즈니스의 유일한 목적이란 보편적 인식을 깨트리며, 자본주의 재설계를 제안한다.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열린책들)에서 자유 시장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자본주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③포스트 팬데믹과 AI-파국이냐, 희망이냐

마스크를 쓰지 않는 모습이 더 어색해진 현실. 새해엔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24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팬데믹 이후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글로벌 위기 분석의 대가로 꼽히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애덤 투즈 교수는 9월 출간 예정인 ‘셧다운’(아카넷)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혼돈에 빠진 세계 경제의 한계와 가능성을 진단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을 돌아본 ‘붕괴’, 지나간 위기 속에서 다가올 위기를 점쳤던 ‘대격변’에 이은 위기 4부작 시리즈 중 3번째 편이다. ‘포스트 키신저’로 불리는 파리드 자카리아는 ‘10 Lessons’(민음사)에서 포스트 팬데믹을 헤쳐나갈 협력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스스로 학습하는 걸 넘어 자신을 창조하는 인공지능(AI)시대, 종교, 과학, 예술, 그리고 인간은 어떤 존재로 이해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포스트 휴먼의 시대를 조명한 책들도 눈에 띈다.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을 창조하는 인공지능 앞에서 신학의 자리는 어디에 있으며, 의식, 과학, 예술의 존재방식은 어떻게 이해돼야 하는지 ‘포스트휴먼’(사월의책)은 묻는다.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변호사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는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이 타자, 환경,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과학 기술과 결합할 때 맞이할 수 있는 내일을 그려낸다. 컴퓨터 과학기술이 정부와 자본의 통제 시스템 속에 가동되는 위험성을 분석한 ‘우리의 적들은 시스템을 알고 있다’(시대의창)는 기술 발전의 그림자를 경고한 책이다.

④민주주의-권력은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민주주의가 언제나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주의는 쇠퇴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지, 민주주의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다시 진지하게 물을 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주의는 만능키가 아니다. 민주주의로 선출된 권력이라고 반드시 민주적이지 않다는 걸, 또 다른 독재로 변질될 수 있음을 우리는 꽤 많이 목도하고 있다. 엇나갈까 받쳐주고, 쳐지면 밀어주고 민주주의는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는 제도다. 마침 올해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가 있고, 내년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고 중심을 잘 세워야 할 때. 어려울수록 역사에서, 기본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광복 이후 한국 근현대사를 민주주의 관점에서 연구해온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의 ‘모두의 민주주의’(책과함께)는 길잡이가 돼준다. 한국 민주주의 태동기를 정리한 1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민주주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2권에 이은 완결편이다. 차병직 변호사의 ‘헌법의 탄생’(바다출판사), 권력 연구의 결정판인 ‘액팅 위드 파워’(부키)는 헌법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파시즘적 논리에 맞설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파시스트 되는 법’(사월의책), 히틀러부터 김일성까지 독재자들의 면면을 해부한 ‘독재자들’(열린책들)은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가짜뉴스를 믿는 과학적 이유’ (휴머니스트)는 극단적 진영논리를 판치게 하는 가짜뉴스 대처 방안에 대해 일러준다.

⑤동아시아-한일 갈등을 넘어 공존으로

일본의 항의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베를린 미테구 모아비트 지역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베를린 미테구 의회는 소녀상이 근본적으로 막아야 하는 전시 성폭력의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난 12월 1일 평화의 소녀상 영구설치를 위한 결의안을 의결했다.베를린=연합뉴스

한일강제병합(경술국치) 111년이 되는 올해, 한일관계에 주목한 책들이 적지 않다. 먼저 일본 전문가로 꼽히는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연구위원이 쓴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 역전’(서울셀렉션)은 일본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일본이 한국보다 뒤쳐지는 이유를 설명한 책이다. 일본의 경제 쇠퇴, 민주주의 후퇴 뒤엔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책임 회피적 사고가 근본 문제란 지적이다. 일본인 승려인 저자가 전쟁 중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해 유족들에게 돌려보내주는 여정을 그린 ‘유골:70년만의 귀향’(후마니타스)도 큰 울림을 준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의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사계절), 길윤형 일본 전문 기자의 ‘지난 갈등은 무엇이었나’(생각의힘)는 한일 관계의 궁극적 해법을 모색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중국과 일본의 1,500년간의 관계를 기술한 ‘중국과 일본’(까치), 중국 공산당의 조직적인 내정간섭과 해외 선전 활동을 공개한 문제작 ‘중국의 조용한 침공’(세종서적)도 눈 여겨 볼 만한 책이다. 동아시아 전반의 식견을 높여줄 만한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의 ‘한미관계사’(창비),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의 ‘한일관계사’(창비)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⑥페미니즘-90년대생 여성들의 단단한 외침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음에도,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의 형법 개정안은 여성계 요구대로 낙태죄를 폐지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이에 반발하는 '모두의 페미니즘 소속 낙태죄'는 역사속으로' TF팀이 지난달 15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 앞 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고: 낙태죄 전면 폐지 집회에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촉발된 페미니즘 리부트, 2018년 미투 운동 이후에도 여성들과 페미니즘은 ‘안녕’하지 못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올해도 페미니즘을 다룬 책이 강세다. 특히 여성의 몸의 서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게 눈에 띈다.

‘말하는 몸’(문학동네)은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노동운동가 김진숙, 여성학자 권김현영과 우리 시대 일하고, 살아가는 여성들 80여 명의 몸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삶과 세상을 읽어내려는 시도다. ‘버자이너 바이블’(글항아리)도 여성 성기에 대한 모든 것을 풀어내며 여성의 몸을 해방시킨다. 여성혐오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 ‘다운 걸’(글항아리), 급진적 페미니스트 필리스 체슬러의 투쟁을 조명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바다출판사), 흑인 여성이 화자로 나선 ‘뒷골목 페미니즘’(서해문집)도 한국 페미니즘의 지평을 넓혀줄 책들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2030대 여성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김초엽, 이길보라, 이슬아 등 90년대생 여성 10인의 인터뷰를 담은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한겨레출판)도 기대작이다. 젠더감수성 변화의 주체자이자 목격자로 역할하고 있는 90년대생 여성들의 단단한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의 기운 찬 미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⑦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직접 쓰고, 기억하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에 어린이 신발 30여 켤레와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OOO(아이 이름)법입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통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란 의미를 담아 시민들이 보낸 것이다. 뉴스1

거대담론에 치여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도 책은 놓치지 않고 찾아냈다. 과로사와 과로자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직접 쓴 ‘과로사, 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나름북스)는 과로사의 사회적 인정이 남은 모든 이들의 치유를 위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말한다. ‘가장 보통의 죽음들’(돌베개)는 방송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이한빛 PD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오늘도 무사히 퇴근하는 걸 행운으로 여겨야 하는 노동자들의 위태로운 삶을 조명한 책들이다.

말광량이 삐삐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국민 작가가 쓴 ‘폭력은 절대 안됩니다’(위고)는 아동 인권의 의미를 되새긴다. ‘양동 쪽방촌 사람들:가난한 우리들의 이야기’(후마니타스)는 복지 수급을 위한 면담 말고는 자기 삶을 말할 일도, 들어줄 사람도 없던 이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이어 붙여 만든 기록으로, 타자화되지 않은 가난의 서사를 들려준다. ‘소록도’(돌베개)는 10년 넘게 소록도에서 활동해온 사회학자가 국가 폭력이 자행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돌아본 기록이다. 소록도에 관한 첫 인문교양서로, 현장 연구의 값진 성과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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