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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세시기] 2021년 흰 소의 해... 여유와 평온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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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세시기] 2021년 흰 소의 해... 여유와 평온 상징

입력
2021.01.01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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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신축년 소띠 해를 맞아 그린 소 그림이다. 안 화백은 코로나19 박멸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소가 코로나19 백신을 싣고 오는 장면을 그렸다. 안창수 화백 제공

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신축년 소띠 해를 맞아 그린 소 그림이다. 안 화백은 코로나19 박멸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소가 코로나19 백신을 싣고 오는 장면을 그렸다. 안창수 화백 제공


“저 소가 우리 다 공부시켜 준 거 아이가.”

2009년 개봉한 독립영화 ‘워낭소리‘에서 최원균 할아버지의 자녀들이 한 말이다. 그들의 대화에서 오랜 기간 일꾼으로 일하며 고생한 소에 대한 고마움과 연민이 느껴진다.

물론 영화는 성실하게 일하는 소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지 않는다. 소의 수명은 길어야 30년인데, 최 할아버지의 소는 40년을 살았다. 소에게 해롭다며 밭에 농약을 치지 않던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손이 많이 가는 쇠죽을 끓여 먹인 정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북 봉화군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우직한 소와 그런 소를 아끼는 인간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최원균(왼쪽) 할아버지가 소에 쟁기를 걸어 밭을 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최원균(왼쪽) 할아버지가 소에 쟁기를 걸어 밭을 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농가 최고의 노동력이었던 소

2021년은 신축년 소띠 해다. 십간의 여덟 번째인 ‘신’과 십이지의 두 번째인 ‘축’이 만나 신축년이다. 신은 백색, 축은 소를 뜻하기에 흰 소의 해다.

소는 근면함의 상징이다. 묵묵히 일하는 소의 모습은 ‘소 같이 일하고 쥐 같이 먹어라’는 속담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는 편안함, 여유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목동이 소를 타고 가는 그림을 보면 세속을 벗어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소가 편안하게 누운 모양과 같은 땅은 풍수지리에서 복을 주는 명당으로 여겨진다.

농경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는 힘이 세다. 사람 4명의 힘을 합친 것과 동일한 힘을 발휘한다. 운송 수단 역할도 했다. 이는 영화 '워낭소리' 속 최 할아버지는 밭에 갈 때나 동네 사람들을 만날 때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다녔다.

우리 민족은 소를 가족처럼 귀하게 여겼다. ‘소는 농가의 조상’ ‘부모처럼 소를 돌보아야 한다’는 말은 소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보험 제도가 들어왔을 때 첫 계약 대상은 사람이 아닌 소였다고 한다. 1897년 6월 대조선보험회사는 사육 소에 대한 보험증권을 만들었다. 기르던 소가 갑자기 죽거나, 소를 도둑 맞았을 때 소의 값을 물어주는 보험이다. 보험료는 소의 크기에 상관 없이 한 마리에 엽전 한 냥이었고, 보험료는 소의 등급에 따라 100냥, 70냥, 40냥 등으로 차등 지급되는 구조다. 보험증권을 보면 소 주인의 주소와 소의 털 색깔, 뿔의 상태 등을 기입하는 난이 있다. 하지만 소 보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보험을 이해하지 못했던 백성들이 소에 대한 세금 제도가 생겨났다고 오해해 크게 반발한 탓이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보험을 만든 곳에서는 각 가정에서 소를 귀하게 여기는데 소 도둑이 많으니까 보험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보험이라는 게 없을 때 소 보험이 처음 도입된 걸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소를 중히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신축년 소띠 해를 맞아 그린 소 그림. 안창수 화백 제공

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신축년 소띠 해를 맞아 그린 소 그림. 안창수 화백 제공


소 아끼던 문화 지명에도 고스란히 남아

소는 농가의 중요한 자산이었기에 잘 보살펴야 집안이 편안해지고 번창할 수 있었다.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소 팔아 자식 대학에 보냈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농경시대 소를 아끼던 문화는 지명에도 녹아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전국의 고시지명(국가지명위원회가 결정한 지명)을 분석한 결과, 소와 관련된 지명은 우면산, 우도 등 총 731개에 달했다. 용(1,261개), 말(744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규모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상상의 동물인 용 다음으로 소 관련 지명이 말 지명만큼 많이 나타나는 것은, 소가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고 친숙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가장 많았다. 전남은 강진군 강진읍 소재 우두봉을 비롯해 소와 관련된 지명이 204개나 있었다. 경남(96개), 경북(94개), 충남(85개), 전북(78개), 경기(43개), 충북(40개), 강원(32개), 대전(12개), 제주(12개), 울산(10개), 인천(10개), 광주(8개), 서울(4개), 대구(1개), 부산(1개), 세종(1개) 등이다.

소가 누운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제주도 우도의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가 누운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제주도 우도의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 중에서도 소의 모양을 닮아 지어진 지명들이 많았다. 제주도의 '우도'는 누운 소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우도의 최고봉은 소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해 '소머리오름'이라고 불린다. 이 밖에도 서울 서초구 '우면산'은 산 모양이 소가 졸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지금의 명칭이 붙었다.

소에 사용되는 도구와 관련된 지명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경남 밀양시에 위치한 '멍에실 마을'은 마을의 모습이 소 멍에와 같다는 데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멍에는 소가 쟁기질 할 때 목에 거는 막대를 가리킨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통골', 경남 함양군 수동면 '구시골', 경북 봉화군 명호면 '구우밭' 등은 소의 먹이를 주는 그릇을 뜻하는 구유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구유는 지역에 따라 구시, 구이, 귀, 여물통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다.

소 도둑 출몰지였음을 알 수 있는 지명도 있다. 소는 최고의 자산이었기 때문에 소 도둑은 늘 조심해야 할 대상이었다. 충남 공주시의 '우금고개'는 과거 해가 저물었을 때 소 도둑이 많이 나타나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피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의 헌신과 의리를 기리는 지명도 있었는데, 경남 거창군 가북면 '우혜마을(소의 은혜)'은 어린 아이에게 맹수가 달려드는 것을 본 소가 맹수를 물리치고 아이를 구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일상에 깃든 소는 여러 의식 속에도 존재했다. 그 중 소놀이굿은 소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소놀이굿은 무당과 마부가 재치 있는 말과 소리를 주고 받으며 노는 굿놀이다. 우마(牛馬)숭배와 농사꾼과 소의 노고를 위로하는 소멕이놀이에 그 기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 양주 지역에서 열리던 소놀이굿은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양주소놀이굿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돼오고 있다.

제주 입춘굿도 소와 관련된 의식 중 하나다. 나무로 만든 소를 끌고 다니며 봄을 알리는 것인데,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입춘 전후 흙이나 나무로 만든 소 인형을 세워 지나가는 백성들이 이를 보고 농사 준비를 할 수 있게 한 게 정적인 행위였다면, 입춘굿은 동적으로 농사 준비를 알린 행위”라고 설명했다.

소를 신격화해 그린 그림 '십이지번(축신)'. 얼굴은 동물이고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십이지번은 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잡귀의 침범을 막는 뜻에서 십이방위에 걸었던 불화를 말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소를 신격화해 그린 그림 '십이지번(축신)'. 얼굴은 동물이고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십이지번은 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잡귀의 침범을 막는 뜻에서 십이방위에 걸었던 불화를 말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흰 소의 해가 떠오르다


조선 후기 작품인 목우도. 소와 목동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은 유유자적하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 작품인 목우도. 소와 목동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은 유유자적하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소는 인간에게 아낌 없이 주는 동물이다.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농기계가 등장하며 최고 노동력이었던 소의 가치가 이전보단 줄긴 했지만, 여전히 소는 지금도 우리 곁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소고기와 우유는 식재료로, 소의 뿔과 가죽은 공예품과 일상품의 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느릿한 행동, 일만 하는 모습은 부정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소 같고 곰 같다’ ‘소에게 염불하기’ ‘쇠고집이다’ 등과 같은 속담은 소의 고집스러움과 우둔함을 보여준다. ‘소가 크면 왕 노릇 하나’란 격언은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힘뿐 아니라 지략을 갖추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이 말인데, 소의 우둔함을 나타낸다. ‘소 궁둥이에 꼴을 던진다’도 마찬가지다. 몹시 둔하여 깨닫지 못할 사람에게는 교육을 아무리 시켜도 효능이 없다는 말로, 소의 둔함을 꼬집는다.

소의 해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은 3월 1일까지 특별전 ‘우리 곁에 있소’를 연다. 우리 관념 속 소의 모습과 일생생활에서의 소의 쓰임을 소개하는 자리다. 소를 신격화해 표현한 그림인 ‘십이지번(축신)’, 소 등에 올라탄 목동이 한가롭게 피리 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 ‘목우도’, 화각공예품인 화각함 등 소와 관련된 작품 8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 휴관 중이라, 지금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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