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대문이 반쪽? 아이들이 휘파람 불며 넘나드는 '파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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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대문이 반쪽? 아이들이 휘파람 불며 넘나드는 '파람집'

입력
2020.12.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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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올해 4월 경기 파주시 모서리 땅에 지어진 '파람집'은 붕 뜬 담장 사이에 대문이 달려 있어 동네에서 '반쪽짜리 대문집'으로 불린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고밀도 도시에서 단독주택은 가족만의 온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다. 공동주택에서 일어나는 외부 시선과 간섭, 소음 등을 막기 위해 단독주택은 마당을 내고 담장을 높게 올린다. 올해 4월 경기 파주시에 지어진 ‘파람집’은 이 같은 공식을 깨고 물 흐르듯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문이 활짝 열린 집이다.

정면에서 보이는 집의 창문에는 눈썹처럼 창문 지지대(임방)가 겉으로 드러나 재미를 더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일과 주거가 합쳐진 집

신도시 주택가의 모서리 땅(대지면적 268.5㎡)에 자리한 이 집은 일과 주거가 합쳐진 공간(연면적 244.12㎡)이다. 발달장애아동 치료사로 활동하는 아내 송선미(47)씨와 의료기기 회사에 다니는 남편 구준한(50)씨 부부가 아동발달센터를 운영하면서 거주한다. 두 아들은 각각 군대에 있고, 독립했다. “아파트에 살다가 노후를 대비할 겸 상가주택을 지어 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기존에 다른 센터에서 일하면서 환경적으로 아쉬웠던 점을 이 참에 해결하다 보니 결국 센터와 집만 남게 됐네요.”

10여년간 치료사로 일해온 송씨는 주로 상가건물에 있던 센터에서 아이들을 치료해왔다. 아이들이 치료실까지 오는 여정은 결코 간단치 않다. 송씨는 “산만한 아이들은 다른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엄마들이 큰 소리로 뭐라고 해야 따라오고, 소극적인 아이들은 엄마 뒤에 숨어서 겨우겨우 오기도 한다”라며 “힘들게 센터까지 와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야 하고, 사무적인 공간이다 보니 아이들이 낯설고 무섭게 느낄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가 내 여러 가게들을 지나 센터까지 오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부모도 많았다. 송씨는 “치료실에 있는 저도 답답한데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라며 “센터가 아이들에게 집같이 편안하고 따뜻한 곳으로 느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말했다.

센터와 집을 함께 짓기로 결심한 부부는 조성학 건축가(BUS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에게도 ‘집 같은 센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건축가는 “특별한 용도에 맞게 공간적으로 유쾌한 경험을 많이 주고 싶었다”며 “또 아이들이 오고, 사용할 공간이어서 따뜻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찾는 파람집의 대문은 아이들의 흥미를 자아내면서 유쾌한 경험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2층으로 구성된 집은 동선과 사용 편의성 등을 고려해 1층은 센터이고, 2층은 부부의 주거공간인 집이다.

집의 대문이 집 앞 사거리를 바라보는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원목으로 만든 문은 아래가 150㎝가량 떠 있는 담에 매달려 있다. 대문을 열지 않아도 담 아래로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다. 대문을 열면 작은 삼각형의 중정이 나오고 징검다리가 현관까지 이어진다. 건축가는 “아이들이 크면서 담장의 높이를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의 키높이에 맞춰 담장을 띄웠다”며 “아이들이 입구에서부터 숨바꼭질 하듯 공간을 재미있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이 대문은 집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동네 주민들은 “아 그 반쪽짜리 대문 집 앞에서 만날까”라고 약속장소를 정한다. 아이들은 대문 앞에서 인증샷을 찍거나, 대문 앞에서 학원버스나 친구들을 기다린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은 공간이에요. 이곳에 오는 아이들이 ‘재미있는 문을 열면 선생님이 웃으면서 반겨주는 집이 있네’라는 기억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송선미)

아동발달센터가 있는 1층은 가정집처럼 거실과 각 방으로 구성됐고,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창문과 천장 등을 나무 소재로 마감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집처럼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실을 중심으로 5개의 치료실이 왼편에 방처럼 배치됐다. 아이들에게 집 같이 익숙한 공간감을 주기 위해서다. “여기서는 치료실에 있다가도 지루해하면 ‘거실 나가 놀까’, ‘밖에 나가 놀까’, ‘다른 방에 가볼까’라며 집안에서 사용하는 명칭을 쓰면서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어요. 그러면 화장실 가는 것도, 다른 공간에 가는 것도 전혀 예민하지 않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요. 집 구석구석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요.”(송선미)

알록달록한 색상이나 캐릭터가 그려진 장식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 대신 단단하기 보다 푹신푹신한 촉감을 살릴 수 있는 바닥재(마모륨)를 선택했고, 따뜻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천장을 나무로 마감했다. 눈부신 조명 대신 은은한 간접 조명을 썼다. 아이들이 마음껏 눕고, 뒹굴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단의 차이를 두지 않고 평평하게 연속된 공간으로 구성했다. 건축가는 “공간에 예민한 불특정 다수의 아이들이 온다는 점을 감안해 개성을 추구하기보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부부의 거주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2층의 중앙엔 채광을 위해 천창을 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휘파람 같은 집

2층은 부부가 거주하는 공간이지만 1층과 내부로 연결돼 있다. 출입문을 두 개로 분리하긴 했지만, 중문과 계단을 통해 손쉽게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다. 보통의 상가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에서 동선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과 반대다. 부부는 계획이 따로 있다. “센터가 자리를 잡으면 2층도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게 열어둘 계획이에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락도 있고, 나가서 날씨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도 있고, 주방에서 요리를 통한 치료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그런 공간을 필요로 하면 언제라도 공간을 쓸 수 있게 할 생각이에요.”(송선미) “그러면 좋지만, 센터가 안되면 (미래의) 손자라도 여기서 키워야 되지 않겠어요.”(하하)(구준한)

4m의 높은 둥근 천창에도 나무를 덧대 따뜻한 집의 느낌을 더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치료에 초점이 맞춰진 1층에 비해 2층에는 좀 더 새로운 구성들이 시도됐다. 거실과 주방 위로 4m 높이의 둥근 천장이 길게 뻗어 있다.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는 천창이다. “일부러 디자인한 건 아니고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된 영향이 큽니다. 집의 양 옆으로 건물이 다 지어진 뒤 마지막에 들어서다 보니 다른 건물에 가려 창을 남쪽으로 낼 수 없었고, 북쪽 도로 쪽으로도 창을 크게 낼 수 없어서 차라리 거실을 집의 중앙에 배치하고, 그 위로 채광을 위해 창을 냈어요. 둥근 구조도 사선 지붕을 피하기 위한 묘책이었죠.”(건축가)

일과 주거의 경계가 흐릿한 만큼 생활의 불편함이 적지 않다. 내 집이지만 낮 시간(치료시간)에도 층간 소음에 조심해야 하고, 냄새 나는 음식을 해먹기도 어렵다. 센터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일 얘기가 부부의 잠자리까지 이어지는 날도 잦다. “저희끼리는 ‘여기가 무슨 합숙소야’라며 서로 웃어요. 아파트에서 출퇴근할 때는 집에 오면 아이들의 엄마, 주부로 역할이 전환됐는데, 여기서는 남편까지 합류해 일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집으로 (일을) 끌고 들어온 것 같아요.”(송선미) “애들도 다 컸고, 직장생활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50대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이 집을 지으면서 다음 인생에 대한 준비를 성공적으로 한 것 같아요.”(구준한)

파람집의 대문 둘레로 아이들이 놀 수 있게 돌로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파람집'은 가장 편안하고 기분이 좋을 때 절로 나오는 휘파람 같은 집이 되길 바라는 부부의 바람이 담겨 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부부는 집 이름을 ‘파람’이라 지었다. 아이들이 가장 편안하고 기분이 좋을 때 절로 나오는 휘파람 같은 집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집이 마치 개울에 놓여있는 하나의 징검다리같이 아이들이 딛고 넘어가는 그런 힘을 주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면서 말이죠. 불편한 점도 있지만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은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많은 아이들과 만나 즐거움을 함께 한다면 생활의 소소한 불편함은 괜찮을 것 같아요.”(송선미) “저는 노후 대비하려고 집을 지은 건데, (센터가 커져서) 노후에 잘 데도 없으면 어쩌죠?”(하하)(구준한)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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