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당까진 바라지 않아요. 우리 같은 필수노동자를 바라보는 인식만이라도 바뀌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 9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진숙(59ㆍ가명)씨는 홀로 지내는 어르신을 찾아 식사를 준비하고, 방과 화장실을 청소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세 시간씩, 돌봄을 신청한 어르신 두 분의 집에 들러 가사를 사실상 대신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이렇게 해서 그가 받는 돈은 시간당 약 1만원. 기본급 없이 하루 6만원이다. 9년째 거의 제자리 수준이다.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근무 여건과 환경 개선이 본격화 한다. 전국에 초유의 집합금지령이 내려질 정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한 상황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킴으로써 사회기능 유지에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지방의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4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최근 열린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했다. 지난 9월 서울 성동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필수노동자 보호ㆍ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뒤 관련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의회에서도 관련 조례가 제출됐고, 국회 역시 발의된 ‘필수노동자보호법’ 논의에 나섰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상당부분 개선할 길이 열린 것이다.
김씨는 “올해 초 마스크 대란 당시 업무 특성상 마스크 지급이 필요하다고 요청했으나, 구청 등에서 별다른 도움이 없어 개개인이 겨우 쓰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며 “이번 조례로 우리를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고 저임금과 고용불안 문제도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의회 조례 통과에 따라 서울시는 재난상황과 특성, 시민생활 안정의 필요성을 고려해 필수업종을 지정하고, 필수노동자 보호ㆍ지원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필수노동자 분야 전문가가 포함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 위원회’도 구성된다. 서울 소재 필수업종의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와 필요시 필수노동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조항도 조례에 담겼다.
필수노동자는 재난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영국 정부가 이들을 ‘최전선 노동자(Frontline Worker)'로 칭하면서 생긴 개념으로,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 배달원, 대중교통 운전사, 병원 종사자 등이 해당된다.
성동구에 이어 서울시가 이들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22일 ‘2차 노동정책 기본계획(2020~2024)’ 발표에서 서울시는 필수노동자를 지원하는 전단조직 ‘(가칭)필수노동지원팀’을 신설, 내년 6월까지 보건ㆍ의료ㆍ돌봄ㆍ교통ㆍ운수 택배ㆍ배달 3개 분야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업종별 실태를 파악한 뒤 지원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 외에도 동북권ㆍ서남권 노동자지원센터 2곳에 ‘플랫폼노동자 전담팀’을 새로 만들고, 컨설팅과 공간 제공 등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힘든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도 돕기로 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동구의 조례 시행 이후 우리 사회 숨은 영웅이었던 필수노동자의 중요성이 환기되고 있다”며 “필수노동자들이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재난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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